총 785페이지

667페이지 본문시작

다. 보부상 김병돈을 기리는 보부상감의비가 구장터에 서있었다. 현재는 광천읍 옹암리 국



도변으로옮겨갔다.

?

옛날부터 광천 쪽다리는 아주 유명했다. 옛날 어릴 적에 “너희 친엄마가 광천 쪽다리 밑
?

에서 살고 있다. 너는 광천 쪽다리 밑에서 주워왔는데, 지금도 너희 친엄마가 너를 기다린
다.”고 어른들이 놀리곤 했다. 어린마음에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중에는 울음을
터뜨리며엄마를찾아간다고떼쓰던추억이아련하게남아있다.
광천쪽다리는옛날구장터에서장이서던시절에구장터앞에있던다리를말한다.하지
만 현재 구장터의 정확한 위치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구장터 앞쪽으로 흐르는 광천천
어딘가에있는것은확실하지만,정확한위치는고증이안된실정이다.
구장터에 관한 기록은 책자마다 간략하게 전해온다. 그만큼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665
는증거일것이다.
2010년에발간된광천읍지에는구장터의내용이다음과같이간략하게나타나있다.
광천장이 생긴 시점은 지금부터 1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원래
광천 쪽다리라고 불리던 나무다리 옆에서 쌀을 내다팔기 시작하게 된 것이 광천시장의 시
초가되었다.
1993년에 발간된 홍성군지 증보판 「홍성지방의 시장 발달사」(李憲昶, 경기대학교 경상대학 부
교수) 편에도구장터의기록이간략하다.
광천시장은 처음에는 장옥이 없이 길거리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광천읍 소재지에서 오
서산쪽으로 오르는 하천 옆에 신대마을이 있는데, 이곳에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신대
마을을옛날에시장이서던곳이라고하여‘구장(舊場)터’라고부른다.
후에 장항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현재의 시가지가 새로 형성되었는데, 강경시장과 함께
생산물의 집산지로 각광을 받았다. 새로 형성된 시가지의 중심지에 광천장이 형성되었다.
신시가지에형성된광천시장은구장터에서옮겨온시장이다.
특히 서해안 원산도 등 섬 주민들은 광천시장을 생활권으로 하여 드나들었다. 장날이면
일백여척의 배가 옹암포항으로 들어와 해산물과 어패류를 판매하고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구입함으로써 상거래가 대단히 활발하였다. 이웃한 천북면, 은하면, 결성면, 장곡면의 주민
들도광천장을생활권으로하여드나들었다.

667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