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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리 말?5
숟가락이라도 자식에게 더 먹이고 자신은 굶으며 깨적을 쓰고 목신을 신고 굴
을 좃던 어머니도 있었다. 흥청거리는 마을 앞 포구에 큰 중선이 새우젓을 싣고
오면 쌀이며 콩이며 곡물을 들고 가서 바꾸던 이들의 모습도 있고, 비린내가 진
동하는 박대와 상어를 쏟아 놓고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가는 완도에서 온 중선 선
원들의 뒷모습도 있었다. 날랜 손으로 굴을 사발로 재던 아주머니의 손놀림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으며, 여럿이 힘을 합해 후리질로 고기를 잡던 장년의 어부
도 있었다. 비록 천수만은 사라졌지만 그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통해 천수만
의 모습을 복원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40여 년 전의 오랜 기억이고, 일부
의전통은그들의어린시절에국한되었기에복원에한계가있기도했다.
천수만(淺水灣)의 역사는 그 외형적인 모습과 존재양태를 이해하는 것에 치중했
다. 18세기에 제작된 고지도(古地圖)를 비롯해, 대간척 이전과 그 이후의 지도들을
보며통해구석구석을이어과거천수만의생생한모습을재구성했다.천수만지
역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산의 지역사 자료인『호산록(湖山
錄)』(1619년)과『서산군지』(1926년) 등을 비롯한 읍지류인『동국여지승람』,
서』등과 일제총독부가 조사한『조선지지자료』(1911년),『한국수산지』(1908년) 등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천수만의 외형적 모습을 비롯해, 천수만의 기능을 포구(浦
口),나루[津]와감길,다리[橋],어종(魚種),어법(漁法) 등으로구분해살폈다.
주민들과의 면담을 통해서는 천수만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 천수만 주변 마
을 사람들의 생업의 특징, 천수만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어업활동에 주목했다.
아울러 대간척으로 알려진 AB 방조제 건립과 간척과 토지개량의 문제도 살폈
다.이는천수만을둘러싸고일어난삶의모습이자그들의문화이기때문이다.
천수만은 명칭 그대로 얕은 바다가 내륙 안쪽으로 깊숙이 내만 되어 있다. 또
한 안면도가 병풍처럼 앞을 가려주어 바람을 막아주고, 내륙의 여러 강으로부
터 천수만으로 내려오는 육수(陸水)로 인해 회유성(回遊性) 어류의 최적의 산란지
(産卵地)였다.‘육수가 많으면 고기도 많다’혹은‘고기반 물반’이라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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