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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실제 탐라 정벌군은 몇 차례 패전을 겪는다. 1366년 도순문사 김유가 100척의 전선으로
지금까지 살펴본 전설은 이 고장이 나은 위대한 인물의 전
제주도 평정에 임했지만 목호들에 의해 패퇴한다. 최영 장군 또한 1372년 탐라 정벌에 나섰
쟁 이야기다. 거대한 세력을 이루어 제주도를 지배하던 몽골의 목호 세력을 격퇴시킨 최영
지만 초기 전투에서 크게 패한다. 당시 최영 장군은 전함 300여 척에 군사 2만 5천명을 이끌
장군의 실담이다. 전설이되 탄탄한 역사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최영 장군의 탐
고 정벌에 나선다. 제주도에 도착하여 11척의 전선을 먼저 상륙시켰으나 이들 군사가 목호
라 정벌담이 왜 이 고장의 산신령과 엮이어 전승되고 있을까? 만민의 영웅이기도 한 최영 장
군사들에 의해 몰살을 당하였다.
군이 왜 이 일대에서 유독 주목받는가? 그 답은 간단하고 명쾌하다. 그가 이 고장에서 나 이
목호 세력은 기병만 3천명이었다고 하니 그 군사의 규모와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첫 전
고장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향토를 대표하는 최고의 신인 닭재산 산신령의
투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최영 장군은 이들 목호 세력과 한 달 가까이 싸움을 이어간다. 그리
지원을 받고, 또 이 고장의 백성들로부터 대대손손 회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고 마침내 목호 세력이 이끄는 저항을 제압하기에 이른다. 역사가들은 이때 몽골족의 대부
지금까지 예산의 인물 전설 , , ,
분이 참형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몽골인과 혈연관계에 있던 제주도인들의 상당수도 이때
최영 장군과 닭재산 산신령>에 대해 살펴보았다.
처형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수가 얼마나 될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에서는 이야기 자체가 실담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단락 ④의 닭재산 산신령 계시는 최영 장군의 탐라 정벌이 얼마나 험난한 전투였는가를
두 형제의 실천적 효행과 우의의 가치를 설명하였다. 나아가 이들이 예산군 대흥현을 고향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탐라 정벌이 인간의 능력으로 타개하기 어려운 난제인 까닭에 신
으로 둔 인물이고, 또한 이들이 만인의 귀감이 되어 대흥의 미풍양속을 후세로 이어주었다
령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신령의 지원이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졌
고 보았다.
다고 하는 믿음은 별개의 문제이다. 요컨대 닭재산 산신령이 최영 장군에게 지혜를 주었다
는 원홍장이 관음사 창건의 동인을 제공하고 스스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고 하는 관념은 이 고장 민중들의 희망이고 해석이다. 그들이 고향 사람 최영에게, 그것도
이야기로 보았다. 표면적으로는 눈 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효행담으로서의 성격을 지
위대한 영웅에게 기대하는 배려이자 지지인 것이다.
니나 본질에 이르러서는 불사(佛事)를 일으키고 성불을 추구하는 두 가지 성격의 이야기로
사실 최영 장군은 고려 말 만민의 영웅이었다. 삼남 일대에 좌충우돌하는 왜구를 진압하
보았다. 아울러 작품 주인공의 출생 및 성장 공간이 예산의 대흥현이라고 하는 점도 언급하
고 철령 이북의 땅을 회복하였으며, 홍건적을 격퇴시키는 등으로 전 생애를 전장에서 보냈
였고, 의 모본이 될 만한 작품이라는 점도 살펴보았다.
다. 그리하여 그는 외적으로부터 백성을 지켜주는 구원의 인물로 거듭났다. 이러한 바탕에
전설은 백제부흥군의 활동과 패배 등에 대해 서술하였다. 그러면
서 단락 ⑥의 ‘신변을 조심하라.’라고 하는 대목은 백성들의 최영 장군에 대한 애정 표현이
서 백제부흥군이 대흥산성을 거점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이곳 대흥이 예로부터 유서 깊은
다. 일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노장에게 지금부터는 개인의 안위를 생각하며 편안하게 살아달
고장이라는 점과 충의의 고장인 까닭에 군사의 충원이 용이한 점을 꼽았다. 이 외에 너른 들
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판을 끼고 있는 고장이라 원활한 식량 보급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최영 장군은 명나라의 철령 이북 반환 요구에 반발하여 요동 정벌을 추진하였다.
전설은 최영 장군의 탐라 정벌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정
대국이자 강국인 명나라의 요구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그 기세를 눌러주겠다는 야심이었다.
벌의 원인이 된 몽골인들의 제주 지배와 목호 세력의 확장, 그로 인한 관군과의 갈등 등에
그리하여 그는 이성계와 조민수를 내세워 요동 정벌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의 이 같은 국
대해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갈등이 최영 장군의 탐라 정벌을 유도하고 끝내 탐라인의
토 회복 계획은 이성계의 변심으로 일거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거개가 죽음을 맞이하는 잔혹한 전쟁으로 이어졌음을 다루었다. 나아가 닭재산 산신령이 최
도성을 장악하고 최영 장군을 유배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심문하고 참형하
영 장군을 보호하려는 이면엔 그가 이 고장에서 나고 성장한 지연 때문으로 보았다.
였다. 서사 단락 ⑦이 바로 이러한 역사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4.공동체사회와민풍
215
214
내포의뿌리예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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