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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사 말
논산은 농사짓는 논이 넓게 펼쳐진 가운데 작은 산이 있어 이를
“논뫼”라 불렀는데 논뫼 라고 발음하기가 까다로워 보통 논미, 논
메, 또는 놀미, 놀메...등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를 한자로 옮겨
적으면서 처음에는 논 답(畓)자를 써서 답산(畓山-동국여지지)이라
고 적었으나 논뫼의 발음과 너무 차이가 있어 후에는 논산(論山-여
지도서)이라고 적었습니다. 즉 논(論)자는 농사짓는 논과 발음이 같
아 음만 빌려 온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여기에 사람들이 여럿 모여 살자 논산리가 되었고
(은진군 화지산면 논산리-여지도서), 1914년 연산, 노성, 은진군을 합하여 새로운 군을 만들 때 새
군청소재지를 논산리에 정하고 이 지역을 논산면으로 확대 개편하였으며, 새로 생긴 군(郡)의 이름
도 논산군으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논뫼 즉 논산이라는 이름이 우리시 전역을 이르는 이름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대둔산과 계룡산자락에 널게 펼쳐져 있는 우리 논산에는 관촉사, 개태사, 쌍계사 등 불교문화유산
과 조선시대 예학의 종장으로 추앙받는 사계 김장생선생, 백의정승 명재 윤증선생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학문을 토론하고 강학하던 유서 깊은 문화유산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이렇게 훌륭한 선현들의 얼을 이어받아 논산문화가 활짝 꽃피도록 모두 함
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논산문화원장
류 제 협
논산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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