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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해서 아들과 손자를 각지로 흩어져 피하게 했다고 한다. 아버지 팽노는 강원도로 갔고 외아들이
었던 그는 김포에서 뗏목을 타고 아산만을 거쳐 곡교천을 거슬러 올라와서 강청리에 은거하게 되었
다고 한다. 그로 인해 합천이씨는 강청리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려서 지금까지 500년 정도의 오랜
기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이순경의 다른 이름은 범기(範基)이고 참봉에 제수되었다. 부인은 창녕조씨(昌寧曺氏)이며 군수를
지낸 조승섬(曺丞暹)의 딸이다. 아들 몽서(夢瑞)를 두었고 이몽서는 영(英), 방(芳), 행(荇) 등 세 아들
을 두었다.
손자 이영(李英)은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에 올랐고 이행(李荇)은 임진왜란 중이던 1593년의 제2
차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하여 선무원종공신에 책훈되었다. 이영(李英)의 아들인 증손자 정형(廷亨)은
부호군에 올랐다.
이순경의 묘는 산양리 송죽동에 있었으나 다른 후손들의 묘와 함께 몇 해 전에 강청리의 종중 납골
당으로 이장되었다. 염치읍 강청리를 중심으로 온양 등 각지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
-합천이씨 납골당 안내 표지석과 납골당-
[104] 연안이씨 이습원
| 李習源
<1779년(정조3년)~1834년(순조34년)>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연안이씨(延安李氏) 19세이며 관동파(館洞派) 아산시 지역, 도고면 도산리 입
향조이다. 후손으로 도고면 도산리에서 거주하다가 온천동으로 이주한 24세(世) 이명승(李明承, 88
98
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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