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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리 지 역 문 화 재 이 해
참여한 관원들의 명단을 적은 다음 어첩봉안도·숭정전진하전도·경현당석연도(사진1)·봉배귀사도
(사진2)·기사사연도(사진3) 등의 행사 장면을 그렸다. 그 뒤에 기신 11명의 좌목과 반신상 초상, 자
필 축시를 배치하고 마지막으로 계첩 제작에 참여한 감조관, 서사관, 화원의 명단을 적어 놓았다.
가로 53㎝, 세로 37.5㎝ 크기로 총 50면에 이르는 화첩이다. 비단 바탕에 그린 채색화이며 행사 장
면과 특히 10명의 초상화 제작에 시간이 많이 걸려서 실제로는 이듬해(1720년) 말에 완성되었다.
이 기사계첩의 그림은 어진(왕의 초상화) 제작에 참여했
던 박동보, 장득만 등 다수의 어용화사들이 담당하였기 때
문에 당시의 의궤도와 초상화 양식을 대표하는 귀중한 자
료이다. 이 때 제작된 12부 중에서 현재 4부가 전해지며 보
존상태가 좋은 2부가 각각 보물 제638호(이화여대 박물관
소장본)와 보물 제639호로 지정되었다.
홍만조가 받았던 기사계첩은 배방면 세교리 안골에 터를
<기사사연도>
잡고 살아온 후손들에 의해 보존되어 왔다. 홍석영(洪錫永,
81세)씨가 오랫동안 관리해오다가 도난 사고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여러 해 전부터 서울 송파구에 사
는 아들이 관리하고 있다. 현재는 아산시에 있지 않으니 아산시의 문화재인가 아닌가 궁금하기도 하
이 상황에서 아산 시민들이 함께 생각해봐야 할 점이 아산시립박물관의 건립이다. 신창 남성리 돌
널무덤에서 출토된 초기철기시대의 대표적 청동기들이 처음부터 아산을 떠나 국립중앙박물관에 보
관되어 있다. 최근에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는 개발 과정에서 발굴되는 선사시대와 고대의 유물들도
모두 아산시에 남아 있지 않은 형편이다.
각 문중마다 전해오는 귀한 자료들의 관리도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제 이런 우리 고장의 문화
재를 우리 고장의 공공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연구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의
위탁 또는 기탁 운동도 활발히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천경석
온양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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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타이딩
A-san of Ti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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