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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논의는 그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
람들이 아니라 외지에서 이 마을로 이사
온 사람들이 주축이 되었다. 한천리 산신
당에서 산신제를 올리는데 한천리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계
원들에게 항의를 하였고 이러한 항의가
받아들여져 협의한 끝에 희망하는 사람들
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연으로 부전대동계가 양반들
한천리 산제당의 모습
만 모여서 계를 조직하였다 하나 꼭 그렇
게 보기는 힘들다. 현재까지도 보전대동
대동계(浮田大同契 - 일명 뜸밭골 대동
계에서는 1천3백여 평의 땅을 소유하고
계) 계원들이 정성을 모아 산신제를 올렸
있으며 이 땅의 임대료를 기반으로 산신
는데 근년에 들어 한천리에 사는 사람 중
제를 올리는 경비를 충당한다.
임제세, 김용기, 김만수 등이 함께 계원으
로 동참하면서 한천리 주민들의 안녕을
무성산 산신제(山神祭)
비는 소지를 올려준다 한다.
한천리 무성산 산신제의 가장 큰 특징
한천리 주민들이 산신제에 참여하지 않
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자연 마을로 볼 때
는 이유가 있었다. 한천리 주민들 중 일부
12동네, 행정리로 볼 때 7개 리에서 참여
가 참여하기 전까지 한천의 산신당이 초
하는 산신제라는 것이다.
가지붕이었는데 매년 한천리 사람들이 볏
무성산 산신제는 시월 초하룻날 올려진
짚을 추렴하여 지붕을 새로 해 이었다 한
다. 신에게 올리는 고사를 조금이라도 깨
다. 한천리 외 마을의 양반들이 모여 올리
끗한 날을 잡아서 해야 하는데 사람이 모
는 산신제라서 그러했다는 이야기인데 한
두 부정한 일을 해야 살아지기 때문에 제
천리 주민들이 함께 참여를 하여도 헌작
사를 올리는 달(月)이라도 부정한 것이 적
등 중요한 제례는 양반들만 하였기 때문
어야 해서 10월이며 초하루라고 한다. 고
에 한천리 주민들은 소외감을 심하게 느
사에 드는 비용 전액을 부전대동계의 계
껴서 한천리 마을 주민 전체의 의견으로
비로 충당한다.
산신제를 불참하였으며 지붕을 해 이는
한해의 산신제는 엄격히 말해서 그 전
일 또한 3~4년 동안 계속해 주다가 중단
년도 음력 10월 27일에 시작된다. 10월
하였다 한다.
초하루 산신제를 3일 정성으로 올리고 나
그러던 것이 해방 후 한천리 주민들 중
면 당년도 산신제의 결산을 위해서 총회
에서 일부가 참여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JUL/AUGㆍ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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