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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내지 09. 05. 14 오? 2:33 페이지 37
공주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구나 이 기록의 영천은 신령령자가 아니
라 길영(永)자로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
그대로라면 영천(靈川)이라는 지명이 아
예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마을에 구전되는 이름은 이와
사뭇 다르다. 지금도 한천리 노인회관의
현판이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신령령
자를 사용한 영천이듯이 이 마을의 본디
이름은 신령스러운 샘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신령령자 샘천자의 영천리였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조선조 말엽 이 마을에 살
지도 않는 한씨가 명당의 터를 잡아 자기
조상의 산소를 이장하여 묘역을 차리고
노인회관 현판의 모습
권세를 이용하여 한씨의 선산이 있는 마
을이라는 의미로 한산(韓山)이라 부르게
하였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한씨의 씨족
지명과 유래-홍길동의 마을
이 한 집도 살지 않는 마을이 한천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천리의 지명에는 아쉬움이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이 마을 노인들은 아
한천리라는 지명에 관한 사항이다. 당
직도 한천이라는 이름을 좋아하지 않고
초 이 마을은 신령령(靈)자에 내천(川)자
자연 마을의 위치로 보아 한산에 가까운
를 사용하는 마을이었다. 공주시 지명지
곳에 노인회관을 지으면서도 한천리 경
에 백제 때는 웅천에 속하였으며 신라 때
로당이라 하지 않고 영천 경로당이라고
는 웅주에 속했고 고구려 때는 공주목에
현판을 걸었던 것이다.
속했다. 조선시대 말엽에는 마을의 지명
영천의 영자가 신령령(靈)자가 분명하
이 밝혀지지 않고 우성면에 속한 것으로
다는 주장도 단순한 구전으로 볼 수 없는
되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영
이유가 또 있다.
천리 한산리 구화리 일부를 병합하여 한
그것은 무성산 자락에 지어진 산신당
산의 한(韓)자와 영천의 천자를 따서 한
에서 올리는 산신제와 관련된 것들이다.
천으로 명명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더
이 마을 산신제는 특이하게도 7개 마
公州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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