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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식
||||
남자의 의복
1.
조선 시대에는 남자 중심의 신분 사회였기 때문에 남자의 의복이 다양하게 발달하였고
그 종류도 많았다 평상복의 종류로는 남녀가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외출복의 종류는 남자의
것이 월등하게 많았으며 특히 벼슬아치들이 입는 공복은 신분과 직책에 따라 모양과 색깔
도 다르게 규정되어 있었다
〔 〕
평 상 복
1
남자가 입는 전통 한복의 평상복은 저고리와 바지 버선 감방 양말 마고자 조끼 소창옷
등이다 이들 의상은 난 자들이 일상 생활을 하면서 입었던 옷인데 이것들은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복식이다 다만 감발이나 소창옷이 지금에 와서는 볼 수 없게 되었을 뿐
이다
저고리와 바지
저고리는 남녀가 입는 웃옷의 통칭인데 삼국시대에는 유 복삼
또는 위해
고 불렀으며 고려 충렬왕
이후부터 저고리 라고 부르개 되었다고 하다 저고
(1275
1308)
리의 만듬새는 남 녀가 같게 되어 있으나 다만 남자 저고리는 여자 저고리보다 길 이 길게
되어 있을 뿐이다 저고리의 각 부분의 명칭을 살펴보면 길 진동 수구 화장 겉섶 깃 동
정 고대 도련 고름 등으로 구분하여 부른다
바지는 아랫도리에 입는 옷인데
말기가 있
고 다리를 꿰는 두 가랑이가 있다 한복의 바지는 솜바지 겹바지의 구별이 있는데 바지의
각 부분의 명칭을 살펴보면 마라폭 큰살폭 작은 살폭 배래기 부리 허리 까마귀머리 등
으로 구분된다 바지를 입은 후에 버선이나 양말을 신고 발목에 대님을 매었다
버선과 감발
번선의역사는 확실하지 않으나 아득한 옛날부터 발을 보호하고 예의를 갖추기 위해 사용
해 왔다 이 버선은 곡선미를 갖춘 아름다운 맵시를 지니고 있어 외씨 같은 버선 이라는 표
현도 있지마는 실용면에서 보면 발을 옥죄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러나
행세하는 선비 집안에서는 남녀 모두가 이 외씨 같은 버선 을 예쁘게 만들어 신었다
삼국사기
의 신라 흥덕왕
때의 기록에 능라족건
비단 버선 에
버선목을 달아붙여 멋을 부리고 다투어 버선에 사치를 부리는지라 흥덕왕이 법으로써 이름
금지하도록 하였다 는 것으로 미루어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랜 옛적부터 멋진 버선을 신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신라 시대의 버선은 요즈음의 타래버선 과 비슷하게 생긴 일종의 발덮개였다고
하며 오늘의 모양과 같은 버선은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오는데 조
선 왕조시데에는 남녀의 구별이 없이 모두 비슷한 모양의 버선을
그리고 행세하는 양반들은 여름에도 버선을 예쁘게 갖추어 신었지만 노동에 종사하는 일
반 백성들은 대개가 맨발이었고 추운 겨울에는 버선 대신에 감발 을 착용했다
이 감발 은
정도되는 기다란 무명 헝겊으로 발을 감아서 방한 효과를내도록 한 것인데 작업
150cm
이 끝나면 풀어서 세탁해 두었다가 다시 사용한다
버선의 각 부분 명칭을 살펴보면 수눅
뒤꿈치 앞부리 볼목 뒤축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양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양말은 개화기에 서양 선교사에 의하여 우리나라로 전래되었다고
한다 천주교에 입교한 베드로 신대보
가 요한 이여진
을 찾아가서 프랑스 선
5u
5
교사 샤스탕 신부
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요한은 장롱 빼닫이에서 양말을
꺼내 놓고 베드로에게 신어보라고 했다 어린 아이의 발에나 신을 수 있는 작은 양말을 처
음 본 베드로는 놀리지 마십시오 어른이 어떻게 어린 아이의 신발을 신을 수 있단 말입니
"
까 라고 말하니까 요한은 이렇게 대답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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