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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
신창역 서쪽에 있는 마을로서 전에 그릇을 만드는 가게가 있었는데 그 안쪽이 된
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임.
장터
신창면사무소 근방 마을인데 이곳에
5
제때 면사무소의 앞쪽이었는데 해방 후에 면사무소의 옆으로 이주하였음
. 50
년대까지만
해도 오목리에는 오목장터가 있었으며 원래는 읍내리에 있었는데 오목리가 옆으로 크게
발전되어 면사무소와 경찰관 지서가 오목리로 옮김에 따라 장터로 이곳으로 옮겨 왔지만
지금은 없어지고
2
7
신창역
: 1922
년에 설치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오목리가 번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읍내
리에 있던 학성면을 오목리로 옮기는 동시에 면 이름을 신창면으로 고쳤음 이곳은 현재
까지도 장항선이 있음.
오거리
이곳을 다섯 방향으로 갈라지는데 각각 읍내리 화달리 온양 가덕리 신곡 가
내리로 나뉘어짐.
동령벌
오목리 앞에 있는 들인데 새터 저수지를 확장하고 수로가 나면서 옥토로 변하였
새터 마을의 지명
새터
새터는 신창 옆에 있는 마을로서 새로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룩하였다 하여 이름 지
어졌고 그 앞내에 다리를 놓고는 새다리 즉 신교라 불렀음 하지만 지금은 저수지에 잠겨
없어졌으며 새터를 신교라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다리가 놓이면서부터 임
삼거리
새터 내에 있는 마을인데 세 갈래 길이 있어 붙여진 이름임
새다리
새터에서 꽃단봉쪽으로 내려오는 내에다 놓았던 다리인데 지금은 저수지에 들어
가 없어졌지만 이 다리를 놓으면서 새터를 신교라 부르기 시작했음.
신창저수지
새터 앞에 있는 저수지
. 1953
년에 새터 저수지를 더 확장하여 신창저수지
라 하는데 낚시터로 이름이 있음.
감나뭇골
학성산 북쪽 기슭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부터 감나무가 많아 감나뭇골이 라고
꽃단봉
신창저수지 동쪽에 있는 산인데 진달래꽃이 많아 붙여진 이름
오사미 마을의 지명
오사미
: 200
년 전에 연안 이씨들이 들어와 살았음 감나무골 북쪽 새터 서쪽에 있는 마
을로 학성산 줄기가 이 마을 뒤를 지나 끝이 남.
7)
전 설
오사미 마을의 전설
70 80
년전 시목동이란 마을이 생겼는데 오산의 오 와 시목동의 목 자를 따서 오목리라
" "
" "
부른다
명산이 옹호하는 것이라 그 산의 맥을 끊어 놓으면 흉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
고 자연을 원형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여 조상은 돌아가셨어도 고향을 지키기 위한 애
향심으로 아직도 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박수국 선생의 일화
함흥사업학교를 졸업한
1941
년에 우리 고장인 오목 국민학교에 부임하여
6
맡게 되었다 역사 시간이었다 학생들의 책상 위에는 모두 일본어로 된 책들이 펴 있었
. "
여러분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
아이들은 뜻밖의 질문에 멍해하며 이구동성으로
"
조선사람입니다
. " "
그럼 안중근이라는 분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
말이 끝나기 전에
한 학생이
"
이또오를 죽인 의사입니다
. "
순간 선생의 눈에는 불꽃이 일었다 아직 조선의
맥박이 뛰고 있구나 그렇다 조선인은 죽지 않는다 저 초롱초롱한 눈들이 이 나라를 올
바르게 이끌어갈 조선의 기둥들이다 저 아이들의 가슴속에 조국 광복에 굳은 의지를 심
어주자
, "
여러분은 분명한 조선사람입니다 조선인은 조선의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 " "
생님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일본말로 된 일본 역사책입니다 어떻게 조선의 역사를
배웁니까
?"
선생은 아이들한테 역사를 가르치기 전에 한글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칠판에 하얗게 새겨진
ㄱㄴㄷㄹㅁ
아이들과 선생의 눈동자는 빛났다 아이들이 하나 하
나 글을 깨우칠 때마다 선생의 눈시울이 더워지곤 하셨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글을
신창역 서쪽에 있는 마을로서 전에 그릇을 만드는 가게가 있었는데 그 안쪽이 된
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임.
장터
신창면사무소 근방 마을인데 이곳에
5
제때 면사무소의 앞쪽이었는데 해방 후에 면사무소의 옆으로 이주하였음
. 50
년대까지만
해도 오목리에는 오목장터가 있었으며 원래는 읍내리에 있었는데 오목리가 옆으로 크게
발전되어 면사무소와 경찰관 지서가 오목리로 옮김에 따라 장터로 이곳으로 옮겨 왔지만
지금은 없어지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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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역
: 1922
년에 설치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오목리가 번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읍내
리에 있던 학성면을 오목리로 옮기는 동시에 면 이름을 신창면으로 고쳤음 이곳은 현재
까지도 장항선이 있음.
오거리
이곳을 다섯 방향으로 갈라지는데 각각 읍내리 화달리 온양 가덕리 신곡 가
내리로 나뉘어짐.
동령벌
오목리 앞에 있는 들인데 새터 저수지를 확장하고 수로가 나면서 옥토로 변하였
새터 마을의 지명
새터
새터는 신창 옆에 있는 마을로서 새로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룩하였다 하여 이름 지
어졌고 그 앞내에 다리를 놓고는 새다리 즉 신교라 불렀음 하지만 지금은 저수지에 잠겨
없어졌으며 새터를 신교라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다리가 놓이면서부터 임
삼거리
새터 내에 있는 마을인데 세 갈래 길이 있어 붙여진 이름임
새다리
새터에서 꽃단봉쪽으로 내려오는 내에다 놓았던 다리인데 지금은 저수지에 들어
가 없어졌지만 이 다리를 놓으면서 새터를 신교라 부르기 시작했음.
신창저수지
새터 앞에 있는 저수지
. 1953
년에 새터 저수지를 더 확장하여 신창저수지
라 하는데 낚시터로 이름이 있음.
감나뭇골
학성산 북쪽 기슭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부터 감나무가 많아 감나뭇골이 라고
꽃단봉
신창저수지 동쪽에 있는 산인데 진달래꽃이 많아 붙여진 이름
오사미 마을의 지명
오사미
: 200
년 전에 연안 이씨들이 들어와 살았음 감나무골 북쪽 새터 서쪽에 있는 마
을로 학성산 줄기가 이 마을 뒤를 지나 끝이 남.
7)
전 설
오사미 마을의 전설
70 80
년전 시목동이란 마을이 생겼는데 오산의 오 와 시목동의 목 자를 따서 오목리라
" "
" "
부른다
명산이 옹호하는 것이라 그 산의 맥을 끊어 놓으면 흉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
고 자연을 원형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여 조상은 돌아가셨어도 고향을 지키기 위한 애
향심으로 아직도 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박수국 선생의 일화
함흥사업학교를 졸업한
1941
년에 우리 고장인 오목 국민학교에 부임하여
6
맡게 되었다 역사 시간이었다 학생들의 책상 위에는 모두 일본어로 된 책들이 펴 있었
. "
여러분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
아이들은 뜻밖의 질문에 멍해하며 이구동성으로
"
조선사람입니다
. " "
그럼 안중근이라는 분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
말이 끝나기 전에
한 학생이
"
이또오를 죽인 의사입니다
. "
순간 선생의 눈에는 불꽃이 일었다 아직 조선의
맥박이 뛰고 있구나 그렇다 조선인은 죽지 않는다 저 초롱초롱한 눈들이 이 나라를 올
바르게 이끌어갈 조선의 기둥들이다 저 아이들의 가슴속에 조국 광복에 굳은 의지를 심
어주자
, "
여러분은 분명한 조선사람입니다 조선인은 조선의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 " "
생님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일본말로 된 일본 역사책입니다 어떻게 조선의 역사를
배웁니까
?"
선생은 아이들한테 역사를 가르치기 전에 한글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칠판에 하얗게 새겨진
ㄱㄴㄷㄹㅁ
아이들과 선생의 눈동자는 빛났다 아이들이 하나 하
나 글을 깨우칠 때마다 선생의 눈시울이 더워지곤 하셨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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