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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주로 밭이 있으며 오른쪽은 논이 많고 정자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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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현재는 이 정자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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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암골마을은 구암리가 있으며 이 구암리는 원암의 옛이름이기도 하며 오리실 북쪽 아래
에 있는 마을로 뒷산에 바위가 아홉이 있고 또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있으며 정현옹주의
생모 상침송씨 세종대왕의 상침 의 묘가 있다 주변 들로서는 구암리 앞에 널려 있는 하괘
미들이 있다.
4)
마을 변천 과정
본래 신창군 남하면의 지역인데
, 1914
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암리 원암리 외곡리를
병합하여 오곡과 구암의 이름을 따서 오암리라 하여 아산군 도고면에 편입되었다.
5)
입 향
오리실 마을의 형성은 약
1300
년대경 약
700
여년전쯤으로 추정되며 인구가 가장 많았던
때는
20 30
년전으로 현재 금령 김씨가
18
대째 살고 있고 현재도 김씨가 많이 살고 있
원암골 마을의 형성은 서기
1400
년경 약
600
여년경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마을 사람들의
성씨도 김씨가 많으나 원암골의 그 성씨 종류가 매우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지 명
오리실 마을 의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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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실
구암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오목한 골짜기에 있으며 옛부터 피난처라고 함 전
에 오동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함.
사기장골
오리실 동쪽에 있는 골로서 옛 도요지가 있었음
마래들
오리실 남쪽에 벌려있는 들로 알려져 있으며 예전에 가뭄이 잘 들어서 마래들이
라 불림.
샘골
오리실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샘이 좋은게 하나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
노갑골
노씨 부자가 살았다 함
원암골 마을의 지명
구암리
오리실 북쪽 아래에 있는 마을로서 뒷산에 바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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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바위가 있다고 함.
원암골
구암리 동쪽에 있는 오리실 너머에 있는 마을임
백자요지
오리실 마을 사기장골에 있다 사발 접시 종지등이 가끔씩 발견됨
원암골 절터
원암골이라는 골짜기에 있으며 기와편과 담장형태의 축대석이 발견 됨
하괘미
구암리 옆에 널려 있는 들
상침송씨묘
정현 옹주의 생모 상침송씨 세종대왕의 상침 의 묘
7)
전 설
상침송씨묘의 유래 원암골 마을
조선조 세종대왕의 상침이였던 정현옹주의 상모 송씨 여인의 일화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
여인이 우물터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지나던 중이 배가 고파 죽겠다고 하면서 여인에
게 재촉하는 것이었다 보다못한 여인은 하는 수 없이 그 중에게 젖을 짜 주었다고 했다
그러자 중이 인사의 표시로 묘자리를 하나 봐 주면서 곧 상침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라
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런일이 있은 얼마후 그 여인이 정말로 상침의 자리에 오르게 되
었다는 것이라 해서 훗날 마을 사람들이 그 여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의 묘를 친히 써
주었다고 한다.
구암바위의 전설 오리실 마을
도고면 오암리 오리실 북쪽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에는 아홉명의 형제를 둔 농부
가 살고 있었다 아홉명의 형제는 우애있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착한 아들들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 가시자 그 농부는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새 어머니를 맞아야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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