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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시 마을의 최고령자는 강원식 할아버지로
87
세이시며 중풍으로 몸이 불편하시다 느
릅실 마을에서의 최고령자는 방씨 할머니로
88
세이시다
3)
자연 경관
사구시 입구를 들어서면 아직 오염되지 않은 물이 흐르는 냇가가 나오고 마을 앞 큰 느티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느티나무는
500
년이 되었다고 팻말에 적혀 있지만 마을 사람들 이
야기로는 약
800
년쯤 되었을것이라고 한다 마을은 봉곡사까지 들어가면서 드문드문 모여
살고 있으며 마을이 매우 길다 봉곡사는 오랜 역사를 이어오고 있으며 봉곡사를 올라가
는 길에는 소나무 숲으로 올라가면 엄숙해질만큼 조용하고 산세가 수려하다 느릅실 마을
은 뒤쪽으로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에는 평야로 마을 앞으로 냇가가 있다.
4)
마을 변천과정
유곡리는 온양군 남상면의 지역으로서 느릅나무가 많이 있었으므로 느릅실 또는 유곡이라
하는데
, 1914
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기리 심곡리 신성리를 병합하여 유곡리라하여
아산군 송악면에 편입되었으며
, 1995
년 시통합으로 아산시 송악면으로 개편되었다
5)
입 향
사구시 마을의 원거인은 예안 이씨의 선조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예안 이씨가 처음으로
터를 잡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뒷산으로 예안이씨의 선조묘가 있는 것으로 마을
사람들 생각으로는 마을의 형성년대는 서기
1600
년경 약
400
년전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
느릅실 마을은 사구시의 마을보다 먼저 생겼든지 비슷한 시기에 형성 되었을 것으로 추정
되며 본래 김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하는데 그의 후손들이 현재로서는 남아 있지 않
아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고 느릅실 마을은 비록 작은 마을이지만 적지미에 사는 사람
들이 대부분 느릅실에서 옮겨가 살아 느릅실에는 종가가 대부분이다.
6)
지 명
사구시 마을 지명
낭떨어지 강정이 신성 강쟁이
신성 서쪽에 있는 마을 입구가 낭떠러지로 되었으며 두
마을이 있는데 한 마을은 강장리에 소속이 되었음
봉수산
유곡 송악 건산리와 여산군과 공주군에 접한
534m
의 산 봉곡사가 있음
봉곡사
유곡리 봉수산 계곡에 있는 절 선조
17 (1584) 3
월에 화암거사가 중수하여
봉서암이라 고쳤다가 정조
18 (1794)
미경 각준 두 사람이 대웅전을 중수하여 봉곡사로
고쳤음 이 절에 길이
75cm,
넓이
43cm
되는 관음불의 화상이 있는데
, 1909
년에 주지가
병이 들어 일인에게 약을 얻어 먹고 병을 고친 고마운 뜻으로 이 그림을 일본으로 보냈는
, 1985
년에 도로 찾아 왔음
사기소
적지미 북쪽에 있는 마을 이조때 사기를 만드는 사기소를 두었음
신성
사기소 서쪽에 있는 마을 우윤 강 정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함
낭떨어지
신성 입구에 있는 낭떨어지
깊은골
봉곡사 밑에 있는 마을로
25
호가 살고 있음
느티나무 정자 도지정 보호수
사기소 마을 앞에 수령
500
년 된 느티나무 정자가 있음
매년 음력정월 그믐날엔 마을에서 노신제를 지냈음.
분청사기 요지
사기소 마을 뒷산에 있다 분청사기편이 발견됨
지풍골
봉곡사가 있는 마을로 깊은 산골짜기에 있었다하여 깊은 골이라 했는데 변하여
지풍골이라 함.
느릅실 마을 지명
느릅실
옛부터 느릅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느릅실이라 함
장승거리
마을 앞에 옛날 성황당이 있던 자리를 일컬음
쏘디장고랑
마을 뒷편 산신제를 지내던 고랑
절터
느릅실 뒷산에 있는 절이 있던 터 빈대가 너무 많아 없어졌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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