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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씨의 6대조이다.
이습원의 고조는 대제학과 판서를 역임한 이일상(李一相, 1612∼1666)이고 증조는 통훈대부로 사
복시첨정을 지낸 이성조(李成朝, 1648~1696)이며 조부는 돈녕도정 이여신(李礪臣)이다. 아버지는
생진과와 문과에 급제하고 대사간에 오른 이석보(李奭輔, 1724~1782)이고 어머니는 파평윤씨로 윤황
晃)의 딸이다.
(尹金
그는 익원(翼源), 휘원(
源), 흡원(翕源), 습원 등 4남3녀 중 넷째로 태어났으며 자는 열지(悅之)이
고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부인은 안동김씨로 김성우(金成遇)의 딸이다. 그가 언제 왜 도고 도산리
로 들어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후로 추정한다. 그는 치수(致秀)와
복수(宓秀) 두 아들을 두었고 이들이 각각 외아들만을 낳았다. 그 이후 조금씩 손이 늘기도 했지만 비
교적 적은 편이었다. 이습원의 후손들은 도고면 도산리를 중심으로 온양, 송악 평촌리 등에 살고 있다.
한편 다른 기록에 따르면 조선 후기에 충청도관찰사와 형조판서(1800년) 등을 지낸 이정운(李鼎運,
1734~?)이 연안이씨이고‘신창 출신’
이라 하였는데 이습원과의 관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이습
원의 증조부인 이성조(李成朝, 1648~1696) 내외의 묘가 도산리 가래골(추곡)에 있으며 이습원의 맏
형인 이익원(李翼源)의 세 번째 부인인 김해김씨의 묘 또한 가래골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습원
보다 더 윗대에서 들어와 자리 잡았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좀 더 구체적인 자료가 필요하다.
[105] 용인이씨 이시민
| 李時敏
<1532년(중종27년)~1592년(선조25년)>
조선 중기의 인물로 용인이씨(龍仁李氏) 22세(世)이며 참판공파(參判公派) 아산시 지역, 탕정면 매
곡리 입향조이다. 450여 년 전이다. 현재 도고면 농은리에 이주해서 살고 있는 매곡리 출신 37세(世)
이문갑(李文甲, 76세)씨의 15대조이다.
그는 공조참판을 지낸 자헌대부 참판공 이승충(李升忠)의 5세손이고 통훈대부로 임피현령을 지낸
평정당(平亭堂) 이봉손(李奉孫)의 현손이다. 문과에 급제한 뒤 사간에 오른 이효독(李孝篤)의 증손인
데 이효독의 후손들은 사간공파로 칭하기도 한다. 역시 문과 급제 후 첨지중추원사에 올랐으며 강직
하고 선정으로 이름이 있던 이홍간(李弘幹, 1486∼1546)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이영성(李永成,
1506~1543)으로 진사시를 거쳐 문과에 급제하고 사간원 정언(正言-정6품)에 올랐으나 아쉽게 일찍
세상을 떴다. 어머니는 개성고씨(開城高氏) 동지중추 고자겸(高自謙)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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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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