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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서 특별히 사직참봉(社稷參奉)을 제수하였다.
[42] 윤승원
尹承元
< ? ~ ? >
조선 후기 무신·충신이다. 무과에 급제한 뒤 처음 관직에 나갔을 때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나자 근
왕(勤王)을 위해 남한산성으로 달려가던 중 충청도 진영에 들어가 적과 분전하다 전사하였다.
[43] 윤씨
尹氏
< ? ~ ? > - 이원빈의 처
조선 후기의 효부(孝婦)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으로 조선 후기의 학자인 천서(泉西) 윤혼(尹 ,
1676~1725)의 손녀이자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掌令)을 지낸 재겸(在謙, 1701~?)의 딸이다. 온양군에 살
았던 이원빈(李元彬)의 처다. 영조 때에 효성이 지극한 효부라는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복호(復戶-조세
등 국역을 면제해 줌)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44] 윤씨
尹氏
< ? ~ ? > - 지응청의 처
조선 후기의 열녀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통덕랑(通德郞) 지응청(池應淸)의 처다. 품성이 온후하여
어려서부터 이미 효성이 지극하였고 출가 후에는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으며또한 남편을 지극하게 섬겼
다. 그 남편이 병환으로 얻게 되자 온갖 정성을 다해 간호하며 병 구환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효험이
있다는 약을 어떻게든지 구하고 남편 대신 자신이 아프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원했다. 그러나 끝내 남편이
세상을 뜨게 되자 남편의 관에 함께 넣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이에 후손들이 그 뜻을 받
아들여 남편과 한 자리에 묻어 주었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져 1808년(순조 8)에 열녀 정려가 내려졌으
니, 인주면 금성리 강당말에 지금도 정려가 전해지고 있다.
<열녀 윤씨 정려 및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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