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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어 아산군지
4,000여명의 다수를 잃은 대 패전이였다.
【해 석문】
명량의 좁은 해협은 조수가 크게 일고 물살이 급함으로 적이 상류를 따라
조수를 타고 가로 막고 있음으로 마치 그 전세는 태산이 찍어 누르고 있는
것과 같으니 우리 군사가 보아 실색하였으나 조수가 물러나가는 항구의 물
은 몹시 빠르고 사나웠다
안위는 조수에 따라 내려가고 바람이 빠르게 부르니 배의 행진은 화살과
같이 적전에 이르자 적이 사면으로 포위하니 죽음을 무릅쓰고 돌전하되 이
31척을 격파하고 적선 소
순신이 모든 군사에게 독전을 계속하니 먼저 적선
수는 도망갔다
이순신이 정중히 여러 군사에게 맹서하고 승승전진 하니 적은 이에 두려
워하여 감히 대적하지 못하고 남은 군사를 이끌고 도망간 것이다
(소대년고)
, 태산에 억눌린 계란과 같은 위태로
그 기세는 바다를 뒤덮다시피했으니
. 그러나 우리 장수들은 모두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군사들은
운 형국이었다
모두 겁을 먹고 후퇴하고자 했다
(당시 일본 수군은 330척의 전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명랑해협을
, 서해의 해상권과 전라도를 장악하려 했으나, 이순신의 조선 수군(13
거쳐
)이 걸림돌이었다. 그들은 우세한 전력을 믿는 한편 이순신을 사로잡으려
, 음력 9월 16일 오전, 우선 그들은 133척으로 명량으로 들어섰다. 전투가
, 싸우다가 때를 맞춰 모두
시작되자 일부 수군은 겁을 집어먹고 후퇴했으나
. 그러나 해류의 방향이 바뀌자 조선 수군은 뱃머리를 돌리어 공격
후퇴했다
, 적선은 마구 엉킬뿐만 아니라. 조선 수군의 화포 앞에 무참히 참패를
하니
) (순신행장)
당했던 것이다
. 그것은 조선
명양협의 패전은 일본군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친 손해였다
해상의 제해권을 잡지 못하였기 때문에 육상의 아군에 대한 군수품 수송을
. 조류의 이용 여하가 얼마나 중대한 결과를 가져 왔는가?
못하였던 것이다
, 드디어 대승한 것이다.
舜臣은 순각의 변화를 잘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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