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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서산천수만의옛모습
24)
았을때에부석면흑석으로보는것이보다타당하다.
부석면의상징표지석인
흑석은 들물과 썰물의 영향으로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여섯 번째 물길과 열 번
25)
째 물길에만 행행할 수 있다.
내륙에 위치한 창기리의 경우 이러한 표지석이
될 수 없으므로 사도포에서 출발하는 대선이 남행할 때에 지표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부석면 흑석 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도포, 흥인천, 흑석은 이 시기에 조운
의 거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천수만의 물길은 이처럼 고려~조선
에이르기까지세곡선의운항과관련해서중요한길목으로활용되었다.
이곳은 현재 가사리 3리의 수등 지역에 위치한 포구로 추정된다. 중선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주로 황도와 광천 등지의 배들이 가을철에 젓갈을 가져왔
다. 현재 주민들의 기억에는 젓갈철에 주로 중선이 드나들었다. 젓갈과 어물이
도착하면 상인들이 이것을 받아 당진군과 운산면까지 짊어지고 팔러 다녔다고
한다. 젓갈배 이외에 주민들이 운영하던 배도 10여 척 있었다. 건너편의 태안군
송암마을에는 중선과 작은 배가 모두 많았으나 이 마을은 그 보다는 어업이 덜
성했다. 이 마을로부터 천수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인평천은 서산의 팔봉의 물,
태안의물이합수되어흘러내리므로물살이세다.
강경리포와갈마곶포
1872년의 지도에는 화변면 왼편 위쪽의 내만한 곳에 위치한 곳과 그 아래쪽
에 위치한 곳에 각기 포구가 한 곳씩 확인된다. 위쪽에는 강경리포(江鏡里浦)가,
26)
흑서와 그 아래에는 갈마곶포(渴馬串浦)가 확인된다.
두 곳 모두 포(浦)라 표기되
24) 문경호, 위의 글, 2014, 26쪽.
25) 여섯 번째 물길과 열 번째 물길은 오늘날의 물때를 기준할 때에 여섯매와 열매로 일곱매인 사리를 전후
하는 날들로, 물이 가장 많이 빠지고 많이 들어오므로 대선이 운행이 가능한 시기이다.
26) 흑서는 갈마리 앞의 검은여[黑礖]로, 지금은 간척지 중앙에 위치해 있다. 간조나 만조에 동일한 형태로
떠 있는 돌이라 하여 뜬돌[浮石]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유래되어 오늘날의 부석면이라는 명칭이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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