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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생은 통덕랑에 올랐으며 부인은 영해박씨(寧海朴氏)이다. 정랑을 지낸 아들 이동엽(李東曄), 선
교랑에 오른 손자 이준형(李俊亨) 등으로 후손이 이어졌다.
집안에 전하는 바로는 임진왜란을 당하여 한양에서 가솔들을 이끌고 음봉면 월랑리로 피난을 온 뒤
그대로 정착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400여 년 동안 후손들이 거주하는 세거지가 되었으며 그의
후손들은‘아산파 종중’
으로 칭한다.
그의 묘는 음봉면 월랑리에 있으며 후손들은 월랑리를 중심으로 염치읍 백암리, 둔포면 둔포리와
염작리, 아산시와 천안시 일원과 수도권 등에 600여 명이 살고 있다.
- 청주이씨 재실과 청의재 현판 -
[103] 합천이씨 이순경
| 李純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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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합천이씨(陜川李氏) 18세이며 목사공파 아산시 지역, 염치 강청리 입향조이다.
합천이씨 1세조인 강양군(江陽君) 이개(李開)의 17세손이며 고려 말에 안동도호부사를 지낸 이요
(李瑤)의 현손이고 안동부사 이중경(李仲卿)의 증손이다. 판관과 낭천현감을 지낸 여심당(如心堂) 이
택(李澤, 1425~1487)의 손자이며 생원 이팽노(李彭老)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평해(平海) 황(黃)씨 윤
원(允元)의 딸이다.
할아버지 이택(李澤)의 장인이 풍산심씨(豊山沈氏) 심귀령의 셋째아들 풍산군 심치(沈
)이고 처가
가 있는 김포에 살았다. 그런데 이택의 처가와 관련된 어떤 사건(확인되지 않음)이 일어나자 피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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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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