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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신씨
辛氏
< ? ~ ? > -이복수의 처
조선 후기의 열녀로 본관이 덕수(德水)인 이복수(李復秀)의 처다. 본디 부행(婦行)이 있었다. 남편이 특
이한 병에 걸려 3년이나 앓았는데 신씨는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지성으로 간호했다. 엄동의 풍설에 몸
을 깨끗이 하고 향불을 피워 하늘에‘이 몸으로 병을 대신하게 하여 주소서’라고 빌었다. 남편의 병이 위
급해지자 다리를 찔러 피를 내서 입에 흘려 넣으니 다시 깨어났지만 결국 며칠 후에 죽었다. 신씨는 물도
입에 대지 않았고 장례일이 되자 약을 먹고 부군의 뒤를 따랐다. 듣는 사람마다 가상히 여겼으며 여러 사
람이 글을 올려서 포상하기를 청하였다.
[37] 심서웅
沈瑞雄
< ? ~ ? >
조선 후기의 효자로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안효공 온(溫)의 후예이다. 아산현 남면 석우리(石隅里-현재
의 염치읍 석정리)에서 살았는데 어려서부터 효동(孝童)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부친이 병들어 꿩고기와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므로 걱정하는 중인데 갑자기 꿩이 방 안으로 날아 들어왔고 물고기가 다리(橋) 위
로 뛰어오르는 이상한 일이 나타났다. 그 고을의 사람들이 수의(繡衣:암행어사)에게 수차 이 사실을 아뢰
니 숙종 계사년(1713년)에 급복(給復-잡세를 면제하여 줌)을 명하였다.
[38] 심씨
沈氏
< ? ~ ? > -신광철의 처
조선 후기의 열녀로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둔포면 운용리 2구(승안말)에 살던 평산 신씨 부사과(副司
果) 신광철(申光徹)의 처다. 병자호란 당시 남편은 전쟁터에 나가고 병환 중인 시아버지를 모시고 있었다.
청나라 군대가 이 지역까지 오게 되자 병든 시아버지를 모시고 경기도 여주로 피난을 갔다가 한 달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집안이 걱정된 남편이 예고 없이 집에 돌아왔는데 되돌아가지 않으면 자결을
하겠다는 심씨의 말에 바로 전쟁터로 돌아가 공을 세웠다. 그러나 얼마 뒤에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남편마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심씨가 통곡하며 지내던 어느 날 밤에 오랑캐가 침입해서 겁탈하려
다가 깨어난 그의 손을 잡았다. 분함을 참지 못한 심씨는 은장도로 오랑캐가 보는 앞에서 손을 잘라버렸
다. 그 후 이 소식을 들은 왕(인조)이 열녀 정려를 명했다. 남편 신광철은 가선대부로, 그는 숙부인으로 추
증되었다.
<열녀 청송 심씨 정려각>
<청송 심씨 열녀 정려 현판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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