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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서산천수만의옛모습
르기까지는1천3백92척이고,제2방축에서제3방축에이르기까지는1천3백
척이고,제3방축에서제4방축에이르기까지는1천3백척이고,제4방축에서
북쪽 방축의 석애(石崖)에 이르기까지는 9백 척이고, 육지(肉地)까지는 2백 66척
입니다.북쪽방축에서돈의도(敦衣島)의대선(大船)을정박하여세우는곳에이르
기까지는8천3백17척입니다.『태종실록』( 13년8월10일(병진))
이는 전라도 조운선이 사도포에서 밀물을 타고 남쪽 방축까지 도달 할 수 있
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사도포가 흥인천과 가까운 바다의 초입임을 의미한다.
흥인천은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와 태안군 태안읍 인평리의 경계에 위치한 현재
22)
의 흥인천을 뜻한다.
따라서 사장포는 이 시기까지 대선이 닿는 중요한 포구
였다. 이 시기에 조운선의 정박지는 흑석이다. 흑석과 관련해서는 아래의 기록
23)
에주목하자.
흑석(黑石)의 바깥 암초(暗礁)의 풀이 매월 보름과 그믐에 만조(滿潮)할 때에는
아울러수중(水中)에깊이잠기는데,비록물이얕은때를당하여꽂아놓은표말
[標木]을보면가히암초의풀의소재를알수있으니,행선(行船)이어렵지않습니
다.한결같이매월보름과그믐에여섯번째의물길[六水]에서열번째의물길[十
水]에이르기까지는사도(沙渡)에서대선(大船)이남쪽방축(防築)에이를수있습니
다.『태종실록』( 13년8월10일(병진))
위의 흑석에 대해서 안면도의 창기리로 비정하기도 하지만 위의 기록으로 보
22) 문경호,「안흥량 굴포운하 유적 관련 지명검토」, 도서문화』43호, 2014, 27쪽에서 창기리로 비정했다.
23) 문경호,「안흥량 굴포운하 유적 관련 지명검토」, 도서문화』43호, 2014,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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