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52페이지

96페이지 본문시작

지금 둔포면 신항리에 거주하는 38세(世) 이관우(李寬雨)씨의 6대조이다.
이익명<李益命, 1765년(영조41년)~1838년(헌종4년)>은 탕정면 용두3리 산골 마을 입향조이고 탕
정면 용두3리에 거주하는 38세(석탄공 20世) 이완우(李完雨, 76세)씨의 6대조이다.
이들은 첨지중추부사 이득형(李得亨, 1614~?)의 현손이고 이성장(李成章)의 증손이며 이세원(李世
元)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이광국(李光國, 1733~1815)이며 어머니는 진주하
씨(晉州河氏)와 영월엄씨(寧越嚴氏)이며 생모는 확인되지 않는다.
석명(錫命), 익명(益命) 등 2남3녀 중 형제이며 그들이 언제 탕정으로 들어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
다. 역시 집안에서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청양에서 도적들이 쪽지를 보내 뭐를 준비해놓으라는 등의
협박이 잦아서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새로 옮겨온 곳이 둔포 신항리와 탕정 용두리였다고 한다.
큰아들 이석명은 일명 태명(台命)이며 자는 백삼(伯三)이다. 부인은 결성장씨(結城張氏)로 장봉령
(張鳳齡)의 딸이며 아들 배천(培天) 등을 두었다.
둘째아들 이익명의 자는 중겸(仲謙)이며 부인은 수원백씨(水原白氏)로 증참의 백사눌(白師訥)의 딸
이다. 배흥(培興), 배곤(培昆), 배수(培洙) 등 3남3녀를 두었다. 이들이 각각 2남1녀, 2남2녀, 1남3녀
를 두면서 후손이 많이 늘었다.
이석명과 이익명의 후손은‘아산종중’
을 이루었고 아산 지역 이외에도 당진, 충북 증평, 경기 과천
등지로도 퍼져 살고 있다. 이석명은 천안 차암동에, 이익명은 탕정 용두리에 묘소가 있었으나 1968
년에 집안에서 예산 대술에 선산을 마련하여 과천과 청양 등지에 있던 선조들의 묘소와 함께 모두 옮
겨 모셨다.
[102] 청주이씨 이성생
| 李誠生
< ? ~ ? >
조선 중기의 인물이며 청주이씨(淸州李氏) 19세로 아산시 음봉면 월랑리 입향조이다. 현재 염치읍
백암리에 거주하는 후손 31세(世) 이남옥(李南玉, 70세)씨의 12대조이다.
이성생은 숭정대부 공조전서 이거의(李居義)의 7세손이며 세종17년(1435)에 문과에 급제하고 가선
대부 예조참판에 오른 이하성(李夏成)의 5세손이다. 증조는 승의랑 이원복(李元福)이고 조부는 통훈
대부 행 과천현감 이두(李
)이다. 아버지는 통훈대부 행 사헌부감찰 이지천(李知天)이며 어머니는
진주김씨(晉州金氏)이다.
96
아산입향조 |

96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