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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선생님의큰아들



「꽃피는팔도강산」으로유명한윤혁민작가를뵙는날은설렘으로하루가시작되었다.


6·25전쟁의 폐허처럼 감정마저 메말랐던 우리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갖게 한 분이 아니

던가?나뭇가지가차창을훑어대는좁은산길을지나서야그의거처몽각산방에닿을수



있었다.서울에서한창드라마작가로명성을날리던그는1994년,어머니가돌아가시자그


곳에서시묘살이를마치고여태껏그대로눌러사는중이다.후배작가들의집필공간으로
도활용되어‘드라마패밀리’라고도이름한다.
윤작가는1938년몽각산방에서조금떨어진수남리167,매재기에서초등학교교사이
던아버지윤태원(太元)과공주에서밤새가마를타고시집온어머니의6남4녀중맏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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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다.20리를걸어나가야초등학교에닿을수있을정도로산골이었다.고무신도귀
하던시절,나무로깎아만든게다를끌며학교에다녔다.여린살갗이게다에쓸리어선혈
이배어난모습을가슴아파하시던어머니얼굴을그는아직도생생히기억한다.
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워낙 영특하여 학습 능력이 뛰어났지만, 아버지는 그의 중학
교진학을허락하지않았다.먹물이들면대처로나가기마련이기에장남만큼은고향에눌
러 앉히기 위한 속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애향심이 남다른 분이었다. 일본 철
도고등학교를졸업하고홍성역에서철도청공무원으로근무하다가할아버지께서돌아가
시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귀향한 분이었다. 당시 수남리 인근의 토지나 임야 대부분
을 물려받았으나 윤 작가를 비롯해 10남매를 키우고 가르치느라 하나둘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마지막으로남은논두마지기마저윤작가의대학등록금이되고이후는다들그
렇듯어렵게살았다.
윤 작가는 첫 국가고시 세대이다. 국가고시를 통과해야만 중학교에 갈 수 있던 시절이
라서6학년학생들은정규수업을마치고도학교에남아보충수업을받았다.고향을지켜
야할윤작가는당연히거기에낄수없었다.보충수업받는친구를교실밖에서기다렸다
가 함께 귀가하곤 했다. 그런 윤 작가의 처지를 안타까이 여긴 담임이 “당신이 못 보내면
내가보내겠다.아깝다.”라는단호한설득으로국가고시날짜를사흘앞두고아버지의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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