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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본관으로 했다. 그가 실제로 아산에 거주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이옹(李邕)까지의 세계(世系)가 불
확실하기 때문에 그의 후손 이옹(李邕)을 실질적인 1세조로 한다. 묘는 음봉면 신수리 소탄동 마을의
안산, 즉 아주백산(아주박산) 중턱에 있다. 임진왜란 이후 그의 묘를 잃었다가 1858년(철종 9)에 마
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묘갈을 다시 찾아서 봉분을 새로 조성한 뒤 비를 세웠다. 단기 4288년(서기
1955)에 후손 천규(天奎)가 찬한 신도비가 묘역 입구에 세워졌으며 1987년에 다시 묘역을 정비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이서의 묘표 -
[101] 경주이씨 이석명
이익명
형제
| 李錫命
| 李益命
조선 후기의 인물로 경주이씨(慶州李氏) 32세, 석탄공 14세이며 석탄공파 아산시 지역 입향조이다.
선대는 오랜 동안 경기도 과천 일대에 근거를 두었다. 이들 형제의 5대조 때부터 청양 대치, 정산 일
대로 들어와 살았는데 집안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난을 피하기 좋은 내포 십승지로 이주하였다고 한
다. 병자호란 쯤에 청양으로 이주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석명<李錫命, 1762년(영조38년)~1822년(순조22년)>은 둔포면 신항리 자라목 마을 입향조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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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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