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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고려 고종
23
(1236 )
년 에 몽고군의
3
군의 아전인 현려가 출전하여 적병
200
여명을 죽이고 많은 병기를 빼앗았는데 고종이 이때
에 싸움에서 승리하게 된 것은 연산에 있는 성황당에 도움으로 여겨 성황당을 성황사로 봉
하였다 한다.
온주동 설화 2
능미의 유래
법곡동에 얽힌 이야기로 순종대왕의 일이다 강설봉이라는 정승이 계셨는데 처를 잃어 상중
이었다 그날 마침 궁궐에서 입궐하라는 명을 받아 정승께서는 입궐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입궐은 했으나 상을 당한 터이라 묵묵히 앉아 계셨다 임금님과 함께 회의하는 중
에도 정승은 말 한마디 아니하셨다 임금님께서 괴이히 여겨 그 사연을 물어 본 즉
, “
내상
을 입고 입궐한 자가 무슨 말을 하겠사옵니까
정승이 대답했다 임금님은 깜짝 놀라시며
말씀하시길
, “
그럼 장례는 치루었는가
정승은
, “
장례는 무엇입니까
신위주도 안잡아 놨
습니다
임금 왈
, “
온양골에 내려가면 내가 신위주를 잡아 놓은 데가 있노라 그곳에 가서
상을 치러라 하시며 친히 하사하셨다 정승께서 온양에 내려와 관가에 이 이야기를 하니
원이 깜짝 놀라며 하는 말이 어떻게 믿느냐고 하니 정승께서는 임금님께 내리신 하사장을
제시했다 친필로 신위주를 준 것을 확인하고 허락하였다 그래서 그곳에 묘자리를 잡았다
묘는 강경묘라 하는데 이 뜻은 강씨 정경부인의 묘이다 그래서 법곡동에는 능묘가 있어 능
미라 불려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능미보다는 법곡동이라고 불리며 뒷동산에 이방골이라
는 데가 있는데 이것은 옛날에 이방들이 살던 곳이라 하여 유래되었다고 한다.
온주동 설화 3
벼락바위 전설
한 젊은이와 노모가 몹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그 해에는 또 가뭄이 들어 쌀 한줌 보리
한 톨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젊은이는 허약하신 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먹을 것을 구하러 다
녔으나 마을 사람들도 모두 가난한 살림이라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하루는 젊은이가 마루
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개 한 마리가 와서 뜰에 똥을 누어 놓고 갔다.
불쌍한 우리 어머니 자식이 오죽 못났으면 저 개만큼도 못 해 드릴까
젊은이는 한탄하며
무심히 개똥을 보았다 희끗희끗 무엇인가 그 속에 섞여 있었다 꽤 많았다 젊은이는 굶주
리고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것을 골라 담았다 몇 십 번을 씻었다 그 보리쌀이 어디서
나왔건 오랜만에 보는 보리쌀이 반가웠다 정성껏 밥을 지어 상을 차렸다 그러나 막상 그
것을 어머니 앞으로 들고 가려니 낯이 뜨겁고 죄스러웠다 젊은이는 보리쌀 두어 톨을 입에
넣어 보았다 맛있었다 젊은이는 상을 들고 어머니께 갔다 어머니는 배고픈 참에 아주 맛
있게 잡수셨다 젊은이는 그런 어머니가 고마워 눈물이 핑 돌았다 그 후 젊은이는 죄스런
마음에 더 열심히 일을 했다 며칠 후 젊은이는 산 중턱에 조그만 집을 짓는 일을 하러 나
가게 되었다 그런 일을 하면 조금의 돈이라도 벌겠구나 하는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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