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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 고을에 분산된 아산 고을 주민들을 대표하여 판중추부사
를 지내고
D¥§!
아산 땅에 우거
하던 김구
가 여러차례 상소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세조
년 의 온행을 계기로 하여 현감
을 지낸 바 있는 조규
등이 세조에게 상소
10
(1464
를 올렸다 온궁에서 신정
의 길조가 나타나 마음이 유쾌했던지라 세조는 신하를 아산
고을 현지로 보내어 사정을 살펴보게 한 후에 이듬해인 세조
년 에 아산현을 복
11
(1465
구시켰다
세조
년 에 세조는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두 번째의 온행 길에 올랐다
14
(1468
왕비인 정희 왕후 윤씨도 함께 동행하였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세조는
9
이로부터
월에 세조의 왕비인 정희 왕후 윤씨와 덕종의
8
7
(1476
왕비인 소혜왕후 한씨가 함께 온양 온천으로 휴양차 거동을 하였다 정희 왕후 윤씨는
11
전에 세조가 세운 신정비
가 비바람에 깎이고 손상되어 보기 흉하게 된 것을 애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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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겨 다시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 이 때에 왕비를 따라왔던 월산대군
덕원군
정현조
등이 공사를 주관하고 임원준
이 지은 주필신정기
필신
를 이숙함이 글씨를 써서 비서을 다시 조각하여 비각을 세우니 이때가 성종
7
(1476
월이었다 이때에 세운 비석과 비각이 지금도 온양관광호텔 구내의 남쪽에 옛 모습 그
대로 보존되어 있다
〔 〕
현종 대왕의 왕비의 온행
3
조선 왕조 역대 임금 중에서 온양 온천을 가장 좋아했던 분은 현종
이었다 다섯 차
례의 온행을 통하여 온양에서 문과
와 무과
의 과거를 실시하기도 했고 대신들로
하여금 초야에 묻혀 있는 숨은 인재를 천거하도록 하여 등용하기도 했으며 효자와 열녀를
찾아내어 포상하기도 했다
현종
년 의 온행
6
(1665
현종 대왕이 온양 온천에 행행하여 증광별시
라고 하는 과거를 특설하고 전국
에서 모여든 선비 중에서 문과
급제자
에서
명을 선
7
200
발하였다
그리고 온양 지방에 은거하면서 효행과 학문으로 명성을 떨친 향현
조상우
에게는 효자 정려
를 명하였고 임금을 호종하여 내려온 영의정 이 경석
5
조상우의 장남 조이후와 차남 조이중이 그 부친의 학덕을 계승하여 현명하고 효행이 탁월하
다고 임금께 천거하였다 이에 현종대왕은 조이후에게 서연관
벼슬을 주고 조이중
에게는 침랑
벼슬을 내렸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온양군 선비들이 윤대평의 효행과 아
름다운 행실을 낱낱이 기록하여 아뢰니 사직 참봉
을 제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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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년 의 온행
7
(1666
년 후인 현종 대왕은 또 온행을 하였는데 이 때에도 증광 별시
를 온양에서 실
1
시하여 문과
닌을 선발하였다
5
90
이와 같이 을사년
년 과 병오년
년 에 걸친
(1665
(1666
2
전국의 선비와 한량들을 불러 모아 문과와 무과시험을 실시하였으므로 온양지방은 온갖 상
인들이 모여들어 전국에서도 이름난 대도회의 번영을 과시하게 되었고 특히 음식과 숙박을
고급하는 술막 주막
의 경기가 대호황을 이루었다
현종
년 의 온행
8
(1667
현종 대왕은 온양 온천에서 두 차례의 온천욕을 경험한 결과 건강에 매우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으므로 이번에는 어머님 되시는 인선왕후
효종대왕의 왕비 장
WŒk
를 모시고 온행 길에 올랐다 이 때에는 연세가 많으신 자전
을 모시고 행행하
였으므로 공식적인 행사는 베풀지 않았고 조용히 온천욕을 하면서 휴식을 취한 뒤에 상경하
였다
현종
년 의 온행
9
(1668
현종대왕의 네 번째 온행은 가까운 신하들과 함께 단촐한 행차였고 이 때에는 자전
이신 인선왕후 장씨와 중궁전
현종 대왕의 왕비 이신 명성왕후
김씨를
함께 모시고 온양에 내려 오셨다
이렇게 임금과 그 모후
와 왕비를 비롯한 조정 대신들이 대거 행차한 기회에 온양
를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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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땅에 우거
하던 김구
가 여러차례 상소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세조
년 의 온행을 계기로 하여 현감
을 지낸 바 있는 조규
등이 세조에게 상소
10
(1464
를 올렸다 온궁에서 신정
의 길조가 나타나 마음이 유쾌했던지라 세조는 신하를 아산
고을 현지로 보내어 사정을 살펴보게 한 후에 이듬해인 세조
년 에 아산현을 복
11
(1465
구시켰다
세조
년 에 세조는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두 번째의 온행 길에 올랐다
14
(1468
왕비인 정희 왕후 윤씨도 함께 동행하였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세조는
9
이로부터
월에 세조의 왕비인 정희 왕후 윤씨와 덕종의
8
7
(1476
왕비인 소혜왕후 한씨가 함께 온양 온천으로 휴양차 거동을 하였다 정희 왕후 윤씨는
11
전에 세조가 세운 신정비
가 비바람에 깎이고 손상되어 보기 흉하게 된 것을 애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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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겨 다시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 이 때에 왕비를 따라왔던 월산대군
덕원군
정현조
등이 공사를 주관하고 임원준
이 지은 주필신정기
필신
를 이숙함이 글씨를 써서 비서을 다시 조각하여 비각을 세우니 이때가 성종
7
(1476
월이었다 이때에 세운 비석과 비각이 지금도 온양관광호텔 구내의 남쪽에 옛 모습 그
대로 보존되어 있다
〔 〕
현종 대왕의 왕비의 온행
3
조선 왕조 역대 임금 중에서 온양 온천을 가장 좋아했던 분은 현종
이었다 다섯 차
례의 온행을 통하여 온양에서 문과
와 무과
의 과거를 실시하기도 했고 대신들로
하여금 초야에 묻혀 있는 숨은 인재를 천거하도록 하여 등용하기도 했으며 효자와 열녀를
찾아내어 포상하기도 했다
현종
년 의 온행
6
(1665
현종 대왕이 온양 온천에 행행하여 증광별시
라고 하는 과거를 특설하고 전국
에서 모여든 선비 중에서 문과
급제자
에서
명을 선
7
200
발하였다
그리고 온양 지방에 은거하면서 효행과 학문으로 명성을 떨친 향현
조상우
에게는 효자 정려
를 명하였고 임금을 호종하여 내려온 영의정 이 경석
5
조상우의 장남 조이후와 차남 조이중이 그 부친의 학덕을 계승하여 현명하고 효행이 탁월하
다고 임금께 천거하였다 이에 현종대왕은 조이후에게 서연관
벼슬을 주고 조이중
에게는 침랑
벼슬을 내렸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온양군 선비들이 윤대평의 효행과 아
름다운 행실을 낱낱이 기록하여 아뢰니 사직 참봉
을 제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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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년 의 온행
7
(1666
년 후인 현종 대왕은 또 온행을 하였는데 이 때에도 증광 별시
를 온양에서 실
1
시하여 문과
닌을 선발하였다
5
90
이와 같이 을사년
년 과 병오년
년 에 걸친
(1665
(1666
2
전국의 선비와 한량들을 불러 모아 문과와 무과시험을 실시하였으므로 온양지방은 온갖 상
인들이 모여들어 전국에서도 이름난 대도회의 번영을 과시하게 되었고 특히 음식과 숙박을
고급하는 술막 주막
의 경기가 대호황을 이루었다
현종
년 의 온행
8
(1667
현종 대왕은 온양 온천에서 두 차례의 온천욕을 경험한 결과 건강에 매우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으므로 이번에는 어머님 되시는 인선왕후
효종대왕의 왕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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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모시고 온행 길에 올랐다 이 때에는 연세가 많으신 자전
을 모시고 행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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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현종
년 의 온행
9
(1668
현종대왕의 네 번째 온행은 가까운 신하들과 함께 단촐한 행차였고 이 때에는 자전
이신 인선왕후 장씨와 중궁전
현종 대왕의 왕비 이신 명성왕후
김씨를
함께 모시고 온양에 내려 오셨다
이렇게 임금과 그 모후
와 왕비를 비롯한 조정 대신들이 대거 행차한 기회에 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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