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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전의이씨 이상량
| 李相亮
< ? ~ ? >
조선 후기의 인물이며 전의이씨(全義李氏) 24세로 태사공파 아산시 지역, 탕정면 갈산리 입향조이
다. 현재 갈산리에 거주하고 있는 32세(世) 이홍상(李洪相, 63세)의 8대조이다.
이상량은 이면(李
, ?~1693)의 증손이고 이수기(李壽祺, ?~1708) 손자이다. 아버지는 이항태(李
恒泰, ?~1751)이며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이상량은 전의이씨 24세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언제 왜 이 마을로 왔는지 확인할 수
없다. 선대는 주로 경기도 광주에서 살았고 바로 위 3대는 예산 대흥에 거주했으며 이상량이 이 마을
로 들어오게 되었다. 마을 동쪽에 그의 부모인 이항태 내외의 묘가 있으나 그의 묘는 어디에 있는지 확인
할 수 없다.
이상량은 진영(晉榮)과 관영(觀榮) 두 아들을 두었고 이후 후손이 퍼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98] 신평이씨 이상신
| 李商新 < ? ~ ? >
조선 후기의 인물이며 신평이씨(新平李氏) 18세(世)로 판서공파(判書公派)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입
향조이다. 현재 공수리에 거주하고 있는 후손 27세(世) 이창영(李昌永, 73세)씨의 9대조이다.
아버지는 이천규(李天奎)이고 어머니는 문화유씨(文化柳氏)이다. 이상신의 자는 흥증(興仲)이고 부
인은 창녕성씨(昌寧成氏)이며 성억창(成億昌)의 딸이다. 그의 선대는 당진군 순성면에 거주하였는데
그가 언제 어떤 연유로 공수리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외가 쪽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추측하
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시기도 막연히 약 300년 전으로 본다.
이상신은 일형(日馨)과 필형(必馨) 두 아들을 두었다. 이일형의 후손은 증손까지는 배방 공수리에
살다가 현손부터는 당진 순성면으로 되돌아갔다. 둘째아들은 이필형의 후손은 지금까지 공수리를 중
심으로 인근 마을에 거주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상신과 두 아들의 묘는 배방읍 회룡리 선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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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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