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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면파도리에서태어나삭선1리노인회장까지



조흥호씨는1939년생으로소원면파도리에서아버지조재춘과어머니신씨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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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1녀중막내로태어났으며6살에되던해에원북면양산리로이사를했다.아내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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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은최인순이고슬하에3남1녀를두었다.


구술자는 원북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가 6·25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했다가 다
시5학년까지다녔지만,사정상중퇴후한학을공부했다.당시구술자집건너편에서당이
있었고조흥호씨의일가이신선생님께한학을배웠다.1959년에우체국집배원으로10년
동안 근무하다 홍성 갈산우체국으로 발령이 나서 그만두고 고향에 남아 농사를 지었다.
삭선미군부대정문에서내려오면건너편에구술자의집이있고인근에포강과12마지기
논이있다.현재는삭선1리노인회장을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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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집배원생활
18살에태안읍으로넘어와서지내다우체국에서사람을뽑는다고하여갔는데우체국
장이 한자로 충청남도 태안우체국을 써보라고 하여 작성 후 합격통지를 받아 근무를 시
작했다.집배원봉급은3만7천원으로쌀한가마에3천원할때였다.1968년4월1일자
전거가보급되기전에는태안읍,원북,근흥,안면을이틀사흘걸려서걸어다녔고근무하
던집배원은6명이있었다.또한,같은해에별정국이생겼는데집주인이우체국을지어서
우표를파는사설우체국개념이었다.원북에는경찰이었던가○○씨가별정국을지어우
체국장이되었다.구술자가담당했던구역1구는송암·남산이고2구로는평천·상옥,3구
는인평·도내를맡았다.구술자는업무중제일어려운부분2가지가있는데전사통지(월
남전)와 불법벌목소송서류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사통지를 들고 가면 바로 건네
주지못하고대화를나누고술한잔기울이다그제야전달하고나왔다.법원소송서류수
령을거부하는사람들이있을땐그냥집앞에던지고나왔다.당시배달지에서10m거리
내로우편물을던지고오면배달완료라는우편법이있어직무태만은아니었다고말했다.
전쟁전지역내좌익활동에대한기억
8·15해방당시구술자는8살이었고6·25전쟁발발때는13살이었다.6·25전쟁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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