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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맹흠규
孟欽圭
<1735년(영조 11년) ~ ? >
조선 후기의 문신·효자로 본관은 신창이며 온양에 거주하였다. 조부는 규대(揆大)이고 부친은 유학 제
원( 遠)이다. 모친은 함양 박씨로 순명(淳明)의 딸이다. 31세 때인 1765년(영조 41)에 진사시에 합격했고
1805년(순조 5) 문과 별시 병과(丙科)로 합격하였다. 선조들을 본받아 지극한 효를 행하여 정려가 내려졌
으며 지금도 배방면 중리에 그의 효행 정려가 있다.
<맹흠규 효자정려 현판 일부>
<맹흠규 효자리비>
[23] 민씨
閔氏
< ? ~ ? > -조의진의 처
조선 후기의 열녀로 사인(士人) 조의진(趙毅鎭)의 처이다.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겼다. 시어머니의 병환
에 옷의 끈을 풀지 않고 울면서 하느님께 빌었으나 마침내 시어머님의 상을 당하여 슬퍼함이 너무도 지극
하였다. 또 그 부군이 기이한 질병을 얻으니 지성으로 구호하였으나 마침내 구해 내지 못하고 죽었다. 민
씨는 억지로 죽을 마시면서 시아버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다가 겨우 부군의 졸곡(卒哭)이 지나자 약
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그가 준비해 놓은 상자를 열어 보니 이미 염습에 쓰일 수의(壽衣)가 모두 갖추어
있었으니 대개 죽음을 결심한 것이 이미 오래 되었던 것이다. 고을 수령과 수의(繡衣-암행어사)가 모두
칭찬하고 가상히 여겼다.
[24] 민씨
閔氏
< ? ~ ? > -홍우기의 처
조선 후기의 열녀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흥근(興根)의 딸이다. 장예원판결사(判決事-정3품 당상관)
홍우기(洪宇紀, 1607~1690)의 처로서 숙부인(淑夫人)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듬해 1637(인조 15)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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