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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권석(權碩)(1671~1729)
조선후기 때의 효자로 자는 덕이(德而)이고 품계는 통덕랑(通德郎)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1671년 1월 19일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행이 지극하였고 후에 장성하여
서더욱더타의모범이된효자로추앙된인물이다.
그는 젊었을 때에는 일찍이 과거에 응시하려 하였지만 그 당시(19세 때)는 기사사화(己巳
士禍)로 노소론(老少論), 예송분쟁으로 노론파의 사류(士類)들이 사사 혹은 유배되던 시기
라부친인절도공에게품언하기를“이세상에태어나입신하는도가있겠지만지금은과거에
응시할때가아닌듯하오니 원하옵건대아버님께서응하지않게하여주소서”하였다.
부친이 동의하여 이후 심학공부(心學工夫)에만 전심하고 여가를 이용하여 심경(心經), 근
사록(近思錄), 성리학(性理學) 등 서책을 구하여 두문불출 서책만 탐독하고 그것으로 낙을
삼아모든근심해소하며명리를추구하려는욕심에서탈피하였다.그리고신미,임신(辛未,
壬申)년간 사화 때를 당하여 시대적 상황을 비관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모
든교유를폐하고다시는서울에가지않았다.
그리하여고향에서부모를봉양하던중부친의병이위독하자칼을가지고손가락을끊으려
하자 어머니가 만류하여 미수에 그쳤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아버지 입에 흘려 넣었더니
잠시깨어유언을하고운명하였다.
그 후 어머니의 나이 85세 그 또한 6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잠시도 어머니 봉양을 소홀히
않았으며외가집이가난하여제사조차할수없자제수일체를마련하여주었고제전도마련
하여 주었다. 어머니가 5개월 동안 병중에 누워 있을 때 모든 일을 손수 수발하였으며 상을
당하여는아버지때와같이상례를다하고묘막을설치하고아침저녁으로호곡하고3년동
안하루도거르지않고존배(存拜)했으며죽만먹으니그로인해병이되었다.
가사가넉넉하여자매에게도재산을분배하였고고아가된여동생가족을성장할때까지보
살펴출가시켰다.숙부를섬기기도부모같이하였으며일가중에빈궁한자에게도양식을대
주고혼사에도보살펴주었다.향리(鄕里)에거처할때는충신을위주로가난한자를구휼하
였다.1729년(영조7년)1월28일죽었으며묘는응봉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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