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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받은사람들도있으나세부적인사항은잘기억이나지않거나말하기곤란한부분이



있어서『남면지』에기록된당시사건의내용을다음과같이요약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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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개성에서 피난 온 10여 명의 가족이 그 배에 타 있었는데 그 집의 사위가 휴대한 카빈


총으로피난민과주민을위협하는등난폭한행동을일삼아배가머물던섬주민들이남면경
찰지서에 신고해서 남면 지서에서 나온 공비토벌대에 의해 의심자들을 붙잡아 태안경찰서에
서간첩혐의로조사한결과1명의탈영병을제외하고모두협의없이풀려나게되었다.하지만
남면지서의경찰관들이피난민을배로돌려보내지않고살해하고재물을빼앗아나누어가졌
다.이후이사건은실종사건으로미제가될수있었으나탈영으로헌병대에끌려갔던사위가
실형을살고가족들을찾다가남면경찰을의심하여잠복끝에단서를찾아경찰의독직사건
을파헤쳐서사실이확인되었다.당시참살에합류한지점장과사건을추도한경찰은대구형
무소에서사형을당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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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후의삶
휴전이되던해9월에징집되어해병대에갔었지만1차에서견디지못해탈락하고다시
육군으로원주에있는부대에입대해서오래근무했다.군대에서가장힘들었던것이배고
픔이었다.한달에한번주는고깃국은고기를구경할수없어서‘돼지가장화신고담박질
(달리기)로뜨뜻한물로지나갔다’라는표현과‘굼벵이가먹어서구멍이뚫린고구마의구
멍에흙이꼭차있어도먹었다’라고했다.그리고엉덩이를몽둥이로많이맞아서굳은살
이박여질정도로구타가심했다고한다.
제대 후에는 경북 칠곡 왜관의 미8군 극동 기지 보급창을 창설하는 곳에서 남면 사람
26명을 데리고 건설 현장의 하도급 일을 했다. 감독 일을 보면서 기계도 다루고 도로포장
용채석작업을하며산을무너트리고돌을깨서도로의부재로사용할수있도록했다.
근흥에서배사업을하기도하고몽대(남면몽산리)에서벽돌공장을운영하기도했다.
12)구술자의 증언을 근거로 정확한 사실관계 내용은 『남면지, 2006, 남면지편찬위원회』의 ‘경찰관 독직 사건’ 내
용을일부발취하여요약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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