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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커다란독이깨졌지만인명피해는없었다고한다.

남,
남면은 전쟁이나 이념으로 인한 씨족 간의 갈등은 특별히 없었으며 아망산의 고잿목에


서 작은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국군이 거아도 쪽 해상에서 작은 보트를 타고 과수원으


로 배를 따러 왔다가 인민군과 교전한 사건이 있었다. 과수원에 들어온 해군이 인민군의


총에맞아죽었으며그사건으로해상에서인민군을향해함포사격을했다.


인민군의 나이는 대부분 18세 전후로 매우 어렸으며 당시에 땅콩 총이라 불리는 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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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인민군이 남면에 계속 주둔한 것은 아니고 잠시 작전했던 상황
이다.
인민군주둔당시남면초등학교에사람들을불러인민군노래도가르치고젊은사람들
은의용군으로끌어갔는데구술자는숨어있거나피해다녀서의용군에끌려가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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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직후구술자는지서로보초를서러많이다녔는데,좌익쪽활동을했던사람을지
서앞소방대본부와개인집지하등에잡아가두어두었는데수많은사람이겹겹이있어
서 보초를 가면 지독하고 고약한 냄새로 몹시 힘들었다. 그리고 갇혀있는 공간에 이(머릿
니)가 들끓었고 작은 방 하나에 20~30명, 30~40명씩 가두어 사람이 겹쳐있었고, 꺼내진
사람들은 똥을 쌀 정도로 매를 맞는 것을 보고 매우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잡
아서 관리하고 매를 때렸던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 출신의 소방대 간부들로 우익 쪽의 사
람들이었다.
지서에있는방한칸의크기는한면이4m정도된것으로기억하며4개의방에사람들
로가득차있었는데여자들은없었던것으로기억한다.
저녁에경찰이어디로끌고가면돌아오지못하는경우가많았는데소문에는배타고나
가서어찌했다는이야기를듣기도했다.그중에서풀려난사람들도다수있었는데풀려난
사람들은경찰이나우익쪽인사의인맥으로풀려나는경우가많았다.
주냄비사건
피난시절에남면앞바다에서주냄비사건이라는것이일어났다.당시‘주냄비선(풍선중
에가장큰배)’이라고불리는배를타고온피난민가족을남면지서에서간첩으로의심해
서조사한사건이있었다.구술자는당시내용에대해서의경으로참여해사건과연루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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