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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걱정없이평안했던어린시절



호적상1925년으로되어있으나아버지가호적을1년늦게해서실제나이보다적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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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이되었다.아버지조영호와어머니장인호사이의5남매(2남3녀)중에서막내로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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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여움을많이받고자랐다.


20세에아내조복동과결혼해서슬하에5남매(1남4녀)를두었으며셋째딸이태안에서
거주하고있으며아내가세상을떠나홀로생활하고있다.일제강점기에초등학교를졸업
하고농사일을했는데21살에해방이되었고6.25전쟁때26세였다.
일제강점기4학년때보통학교에서심상소학교로바뀌었는데,아버지는일본글배워서
뭐하냐고학교에보내지않아서당에다니며공부하고있는데형님과누나들이9살때아
버지가안계신틈에학교에보내서다닐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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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형님이석수일을하며보령에서돌을가져다가부잣집의상석이나망부석등
을만들었다.석물1벌을작업하면벼가20섬이나되었기때문에살림살이는비교적안정
되어식량을걱정하거나밥을굶는일은없었다.
어머니가46세에본인을낳아형님하고19살이나차이가났다.동네는70여호가살고
있었는데 17호 정도는 자급할 수 있는 정도의 가구였고 나머지는 대부분 소작해서 살림
을 이어가고 5~6호 정도는 백화산에서 땔감을 구해 팔아 좁쌀이나 수수를 사서 죽을 쒀
먹는형편이었다.
일제강점기 서당에 다닐 때 흥주사의 한 주지라고 하는 한문에 능한 분이 있어서 그분
에게한문을배웠다.그스님은탱화를그리러다니던분이라그분이일을나가면그아들
에게배우기도했다.
은행나무주변으로새순이많이돋아났다.은행나무순이곱고예쁘게자라나서7월이
면그움난가지를베어부석사람에게팔기도했다.
농사일은 매형이 대부분 해줬고 본인은 아버지와 형님이 일하고 오면 일한 것에 품삯
을계산했다.
좌익활동가가유난히많았던동네
정부에서 좌익활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보도연맹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가입하면 안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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