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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김효일
金孝一
<1610(광해군 2년) ~ 1664(현종 5년)>
조선 후기의 효자로 본관은 경주(慶州)다. 자는 행초(行初), 호는 미은(美隱)이다. 7세에 부친을 여의고
어머님을 지극한 효도로 섬겼으며 어머님 병환에 손가락을 끊어 약에 섞어 바쳐서 소생시켰다. 그 후에
모친상을 당하여 애통해 하다가 졸하였다. 1669년(현종 10)에 현종이 온양온천에 왔을 때 선비 이지강(李
之綱)이 고을의‘4효1열(四孝一烈)’
에 그를 포함해서 포상을 상소했다. 이로 인해 효행으로 의금부도사
(義禁府都事)에 특별히 추증되었다.
[17] 김후발
< ? ~ ? >
조선시대의 효자로 신창현 사람이다. 어려서 부모의 상을 당하여 3년을 묘에서 지냈다. 추우나 더우나
가리지 않고 손발이 얼어서 손·발톱이 몽땅 빠져가며 울면서 지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세워졌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18] 남국걸
南國傑
< ? ~ ? >
조선 중기의 무신·충신이다. 본관은 의령으로 직제학 간(簡)의 후
손이자 목사공 척(倜)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의령 남씨 도고지역 입
향조인 진사 확(擴, 1485~1547)이고 어머니는 경주 이씨이다. 진용
교위(進勇校尉-정6품)에 올랐고 임진왜란에 의병장으로서 활동하
다 삭녕(朔寧-경기도 연천)에서 전사했다. 도고면 시전리에 허장(虛
葬)을 해서 묘를 두었다.
<남국걸의 묘>
[19] 남국신
南國信
<1510(중종 5년) ~ 1601(선조 34년) >
조선 중기의 충신으로 본관은 의령이다. 의령 남씨 목사공파 파조
척(倜)의 현손이며 도고 지역 입향조인 진사 확(擴)의 아들이다. 어
머니는 경주 이씨이며 충신 국걸(國傑)의 아우이다. 부인은 남양 홍
씨 부사 정필(鼎弼)의 딸이다. 자(字)는 사립(士立)이다. 임진왜란 때
에 형이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것에 통분하여‘위로는 나라를 위하
여 죽음을 각오하고 아래로는 형을 위하여 원수를 갚으리라’
고 스스
로 맹서하고 이순신에게 찾아가 소지(所知-도움을 주는 사람)가 되
<남국신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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