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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여성문인의 발굴과
문화원의 역할
오청취당 시비
문 희 순 (충남대)
3. 충남 각 문화원의 역할과 여성문인의 발굴
첫째, 충남 여성들 각자의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결과이다.
충남 여성문인이 발굴되고 번역된 데에는 충남
충남 여성들은, 조선이라는 시대 속에서 자신들이
시군 소재 문화원들의 역할이 컸다. 위 여성
1. 문학 꽃을 피워낸 충남의 여성
홍성 이옥재(李玉齋,1643~1690)·이온(李?,17~18세기)
일구어 낼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한탄하였다.
문인 가운데 대전의 김호연재(金浩然齋), 서천의
안동김씨(17~18세기,李命世처)·안동김씨(17~18세기,李?처)
조선시대 충남 여성들의 삶은 그녀들이 남긴 문학
안동김씨(17~18세기,李恒壽처)·안동김씨(18세기,이옥재의서녀)
그러나 그러한 현실에 좌절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김임벽당(金林碧堂)과 신부용당(申芙蓉堂), 홍성의 이옥재
작품·일기·한글편지 등으로 유추할 수 있다. 온전한
기계유씨(1818~1875,金好根처)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시도하고 모색하였다.
(李玉齋)·이온(李?)·안동김씨(李命世 부인)·안동김씨(李?
서산 오청취당(吳淸翠堂,1704~1732)
형태의 문집 발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전의 김호연재(1681~1722)는 에서 “음양은
부인)·안동김씨(李恒壽 부인)·안동김씨(이옥재의 서녀),
예산 남정일헌(南貞一軒,1840~1922)
작품의 편린을 남기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성들의
성질이 다르고 남녀가 행실이 다른 것이니, 여자는
서산의 오청취당(吳淸翠堂), 예산의 남정일헌(南貞一軒),
논산 광산김씨(1842~1917,宋國老처)
문학 활동과 작품의 보존에 취약했던 당대의 상황을
감히 망령되이 성현의 유풍을 취급하지 못할 것이다.
천안의 김운초(金雲楚)의 문집은 각각 대전의
청양(논산) 기각(綺閣,19세기)
고려해 볼 때, 각종 문학평론서나 시선집, 문헌에 수록된
그러나 아름다운 말과 착한 행실과 교화의 밝음이
대덕문화원, 서천문화원, 서산문화원, 예산문화원,
천안 이설봉(李雪峯,16~17세기)·김운초(金雲楚,19세기)
여성들의 작품은 그 자체가 기적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부여 광산김씨(1655~1736,李?命처) 등이다.
어찌 남녀가 다름을 혐의하여 사모하고 본받지
천안시서북구문화원(구.성환문화원) 등의 예산 지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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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전 포함) 여성가운데 문집이나 단독 작품집
않겠는가?”라고 말한 바 있다. 비록 여성의 몸이기는
한글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①한시집(후손가 소장) →
이상의 충남 여성 문인의 분포는 현재까지 우리나라
테마기획
테마기획
형태의 기록물이 전해지는 여성을 오늘날의 행정
하나 하늘에서 받은 성품은 애당초 남녀의 차이가
②한글번역본 출간(문화원) → ③학계의 연구 논문
에서 발굴된 여성문인의 규모로 볼 때, 타 지역에
구역별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없다는 대전제를 천명하였다. ‘여성으로서 성인되기를
발표(연구자) → ④콘텐츠화(문화원)의 단계로 확산되며 충남
비하여 월등히 많은 특징이 있다. 이는 조선시대
대전 김호연재(金浩然齋,1681~1722)·청송심씨(1747~1814,송계래처)
기약한’ 여성문인이다. 이렇듯 여성자신의 정체성에
여성문인의 삶과 문학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충남에 살았던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교육 받았다는
세종 창녕성씨(15~16세기,최당처)·곽청창(郭晴窓,17~18세기)
대한 인식과 자신감은 남성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채 후손가나 박물관 고문서실
증거이고, 한편으로는 여성문인 발굴이 적극적으로
공주 조애중(曹愛重,1574~1645)·광주안씨(18세기,南泳처)
독서량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등에 소장되어 있는 여성문집이 적지 않을 것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다.
서천 김임벽당(金林碧堂,1492~1549)·신부용당(申芙蓉堂,1732~1791)
생각된다. 앞으로 충남 각 지역의 문화원들에 의해
둘째, 기호유학의 난숙·전개가 여성들의 학문적
더욱 적극적으로 발굴되어 충남의 여성문인사가 더욱
2. 충남 시·군별 여성문인 분포도
사유에 동기부여 하였다.
찬란히 빛나기를 희망해 본다.
【조선시대 충남에서 문집(일기·번역시집)을 남긴 여성문인】
위 표에 기록된 여성들은 모두 기호학파(畿湖學派)의
4. 여성문인 배출의 의미
자장 안에 있는 여성들이다. 조선 후기 특히 18세기로
접어들면서 여성 지성인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조선시대는 성리학적 유교이념의 강화와 함께 여성의
특징이 있다. 논산에는 돈암서원이라는 기호학파의
문자 행위는 그만큼 더 위축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중심 서원이 있다. 서원을 중심으로 완성된 충남 사족의
있다. 그러나 충남 지역은 이상에서 확인한 것처럼 이
학문적 발전과 성취는, 여성들의 학문적 사유에도
우려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충남 여성 문인의 면면한
커다란 동기가 부여되었다. 충남의 선비가들은 아들 딸
문학 활동과 문집 발간의 정신사는 어디에서 근원한
차별 없이 교육시킨 사례가 많다. 훌륭하게 교육받은
것인가? 그 현상의 기저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여성들은 혼인을 통해 가정 속의 교육자가 되어
특징이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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