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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로 여겼지만 한 달에 한 번 만월(
)을 이루는 달은
고마운 존재였다. 밤이 어두우면 맹수의 접근도 알 수 없고
적의 습격도 눈으로 볼 수가 없기에 인간에게 있어 어두운
밤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만월은
인간에게 있어 고마운 존재였고, 그 결과라 할 수 있다.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고 먹고 마시고 놀면서 춤추었으며,
줄다리기, 씨름, 강강수월래 등의 놀이가 자연스럽게 형성
되었다.
그러므로 고대에 만월을 갈망하고 숭상하던 시대에 이미
일년 중에서 가장 달이 밝은 한가위는 우리 민족 최대의
축제로 여겨지게 되었고, 후에 와서 의식화(
)되어 명절로 제정(
)을 보게 되어 오늘날
까지 전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잘 나타나 있다. "신라
제3대 유리왕(
) 9년(서기 32년)에 왕이 6부를 정하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
( 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두 패로 가른 뒤, 편을 짜서 7월 16일부터 날마다 6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 가지고
지는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를 가배(嘉
)라 한다"고 하였고, 또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회소(
)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뒷날 사람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
曲)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추석의 풍속
추석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는 벌초(
)?성묘(
)?차례
)?소놀이?거북놀이?강강수월래?원놀이?가마싸움?씨름?
반보기?올게심니?밭고랑 기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대표
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벌초와 성묘
추석에 조상의 무덤에 가서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 주는데 이를 벌초라 한다. 옛날 조상의 묘를 풍수
설에 의한 명당에 쓰기 위하여 몇 십리 먼 곳에까지 가서 쓰는 수가
많았고, 또 묘를 쓴 다음 이사를 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묘가 집
근처가 아니라 먼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추석을 맞이
하여서는 반드시 벌초를 하는 것이 효성의 표시와 도리로 여겼다.
차례
추석 이른 아침에 사당을 모시고 있는 종가( 家)에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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