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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하지 않은 듯하다
사방관
사방관은 네모 기둥 모양으로 만든 관인데 선비들이 망건을 쓴 위에 덮어 쓰던 것이다
충정관은 윗 부분이 점점 크게 되었으나 사방관은 아래 위가 같은 크기로 되어 있으며 탕건
을 쓸 수 없는 보통 선비가 망건 차림으로 쓰던 관이었으나 조선 왕조 중엽이후부터 자취를
감춘 듯하다
유자례관
신라시대에 사용했던 관이라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관례
를 행할 때에 선생
쓰던 관이라고 한다 관례는 성인
이 되기 위한 예식인데 관례를 올리는 대상자를 관
라 하고 이 관례를 주재하는 사람은 선생이라고 한다 이 때에 선생으로는 관자의
스승이나 또는 그 마을에서 학덕
이 있는 노인을 초빙하여 부형의 입회하에 관례를 올
렸는데 선생은 반드시 머리에 유자례관을 쓰고 정중한 태도로 관례를 진행하였다
사모
사모는 관복
을 입을 때에 머리에 쓰는 관모
인데 오사모
라고도 한다
이 사모는 검은 비단실로 짠 모자로서 고려말 우왕 우
때에 명
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단령
과 함께 관리의 공복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조선 오아조 말기까지 계속 사용하
6
였다
벼슬아치가 공무를 처리할 때 쓰던 사모는 민가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에 신랑의 예
으로 쓸 수 있게 허용되었는데 남자의 결혼은 곧 벼슬하는 것과 동격으로 인정하였
기 때문이다
총각이 결혼할 때는 사모뿔을 양쪽에 모두 달았고 재혼할 경우에는 뿔 하나를 빼어 내고
초례를 올렸다
〔 〕
방한모
5
옛날에선인들이 추위를 막기 위해 머리에 쓰던 방한모로는 만선두리 남바위 휘향등이
있었는데 이것은 모두 남자용이었다
그리고 만선두리는 벼슬아치만이 쓸 수 있었고 남바
위는 신분에 따라 재료가 달랐으며 휘항은 가장 완전한 방한모로서 누구나 사용하였다
만선두리
벼슬아치가 겨울에 예복을 입을 때 머리에 방한구로써 만선두리 을 썼는데 모양은 휘항과
비슷하게 생겼다 휘항과 남바위 만선두리는 서로 비슷한 모양을 지니고 있으면서 그 사용
의 신분에 따라 여러 가지 규제가 되어 있었다 특히 만선두리는 벼슬한 양반이 아니면 착
용할 수 없는 귀족의 방한모였다
남바위
겨울에 쓰는 방한모의 일종인데 난이
또는 이엄
이라고도 한다
조선초기에는 상류층 남녀만이 착용하다가 차차 서민층에서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모양
은 머리 부분이 터지고 앞은 머리와 이막를 덮을 정도이며 뒤쪽은 길어서 목을 덮었다
그리고 부인용은 아름다운 구슬과 수를 놓아 장식하였는데 조바위나 아얌은 이 남바위를 변
형시킨 것이다
남바위는 신분에 따라 재료가 다른데 당산관
은 단
이나 초피를 쓰고 당하관
은 초와 쥐가죽을 썼으며 민간에서는 수달피 가죽을 사용하다가 값이 비싸기 때문에
족제비 가죽을 사용했다 그리고 호사하는 노인이나 허약한 사람은 봄이나 가을에도 춘추
남바위를 썼다
휘양
휘양은 머리에 쓰는 방한구
의 일종이며 남바위처럼 생겼으나 뒤가 휠씬 길고 제
물로 볼끼가 있어서 목덜미와 뺨까지 싸게 되어 있고 볼끼는 뒤로 젖혀 매기도 한다
휘양은 휘항
또는 호항
이라고도 한다
〔 〕
승려
의 관모
6
ªı
승관
약탕관을 엎어 놓은 것처럼 위가 둥그스러한 모양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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