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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어 단계별 교리 공부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출판물이었다. 이 책은 1939년에 다른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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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들에 무료 배포되기도 하였다.
더불어 기억해야 할 것은 서산 본당의 전신인 수곡 본당에서 시작된 회장 피정이다. 회장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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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 1912년 12월 성탄절을 맞아 수곡 본당에서 폴리 신부의 주도로 전국에서 처음 시행되었다.
성당에 며칠간 머물며 함께 기도하고, 교리 문답과 회장의 본분 등을 배우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단기교육과정이었다. 이 제도는 후일 한국 교회 안에서 보편적인 교육방법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1958년 대철중학교(운산면 갈산리)의 설립도 주목해야 한다. 1956년 9월 감리교에서 운영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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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인수하여 천주교 유지재단에 편입시킨 것이 학교 설립의 시작이었다.
중등교육 과정의
소규모 학교이지만 천주교 안에서는 도심이 아닌 농촌지역에 설립된 보기 드문 사례이다.
2) 순교자 현양운동
서산지역에는 천주교 순교지로 잘 알려진 해미가 있다. 이런 까닭에 서산지역 천주교 안에서는
일찍부터 순교지 발굴과 순교자 현양이 시작되었다. 해미 순교지 발굴은 1935년에 시작되었다.
병인박해 때 해미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하는 장면을 목격한 노인들이 증언함으로써 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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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리에서 순교자들의 유해를 일부 찾을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해미에 천주교 소유의 마땅한
부지가 없었기 때문에 발견된 유해들은 상홍리 공소 뒤편 백씨 문중 묘로 안장되었다.
순교자 유해가 발굴되고 상홍리에 안장된 이후 서산지역에서는 순교자 현양 운동이 활발하
였다. 기해박해 백주년이 되는 1939년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상홍리 순교자 묘역을 지속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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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할 것이 권고되자 많은 이들이 묘역을 찾았다.
1940년 서산 본당에서는 순교 복자들을 위한
3일기도가 열리기도 하고, 해미 성지까지 도보성지순례를 하는 등 순교자 현양에 남다른 모습을
11)
보였다.
1956년에는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는데 사용되던 해미 자리개 돌을 서산 본당 구내로
옮겼고, 1977년에는 상홍리 순교자 묘역에 돌 제대가 봉헌되어 순교자들의 넋을 기렸다.
서산지역에서 순교자 현양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됨에 따라 해미는 순교지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1980년대 들어 해미를 성지로 개발하자는 움직임이 일어 1985년부터는 해미 성지 가꾸
『경향잡지』905?6호, 294쪽.
『경향잡지』269호, 18쪽.
『경향잡지』1081호, 183쪽.
9) 방윤석,
『상홍리‘병인년 해미 순교자 묘’발굴에서 이장까지』
『교회와 역사』397호, 9~11쪽.
10)
『경향잡지』911호, 457쪽.
11)
『경향잡지』917호, 20쪽; 922호, 139쪽.
12) <가톨릭신문> 1985년 7월 7일,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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