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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태안읍반곡리에서태어나서현재까지거주

남,
태안읍반곡리649번지에서3형제중둘째로태어나28세에한정순과결혼하면서분가

후슬하에4남1녀의자녀를두었다.결혼하고분가한집에서는10년정도살았으며38세



에현재사는본가에다시들어오게되었다.


일제강점기 태안국민학교(태안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태안중학교까지 마치고 농사일


과동네총대일을보다가6.25한국전쟁을겪었으며,이후군대에갔다와서당시지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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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원4급시험에합격하고공직생활을했다.당시에는태안지역이서산군에편입되어있
었기때문에행정구역상서산군공무원으로1961년2월10일부터태안면사무소에서처음
공무원생활을시작해서1990년도에정년으로퇴임하고시조를배워태안군시조회와시
우회회장도8년정도하고노인대학학장도2년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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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과마을상황
일제강점기에 입학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해방되고 다음 해 졸업하게 되었는데, 일본
식교육을받았기에한글이라도알아야한다고몇달을더배워7월에졸업했다.졸업하고
마을일을보는구장
밑에서총대
로일했다.
6)
7)
구장이 마을의 대표 어른 노릇을 하고 총대를 맡은 본인은 다양한 마을 일을 봤다. 총
대를 하다가 6·25 한국전쟁을 겪게 되었는데 구술자가 살았던 마을에는 좌익과 우익의
극심한대립은없었다.다만반곡리2구는좌익쪽이많았고반곡리1구는우익쪽이많았
다. 당시 총대를 보면서 모셨던 구장이 우익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대부분은우익의성향을따라갔다.그렇지만좌우익에대한갈등은심하지않았기
에그로인한마을사람들의인명피해는없었다.하지만우익성향이었던마을사람들은
6.25 한국전쟁이 나고 인민군 치하가 되자 대부분 피난을 갔다. 당시 마을에는 주로 농업
에종사했는데가뭄이심해서논바닥이다말라서단단했기때문에사람들이논으로들어
6)구장:지금의이장이나도시의통장을이르는말로써행정구역의최말단직책으로일제치하에구장이라불렀
다고함.
7)총대:구장을도와서마을일을보조하는역할을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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