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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마을에서발굴한현대판‘만파식적’(우종실) !
고 텔레비전도 없어서 전쟁이 난 줄도 몰랐다. 그런데 어른들
말씀이 “난리가 났다” 하여 비로소 전쟁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되
었다. 그 때 온 마을 사람들이 뒷동산에 있는 금광굴로 피했다.
사람들은 금을 캤던 폐광을 금광굴이라고 불렀다. 당시 윗태평
마을에는 12가구가 살고 있었다. 그의 가족은 동굴의 막장에
자리 잡았다. 동굴 안에서는 가족별로 모여 지냈다. 동굴 안에
호롱불을 밝히고, 밥을 포함해서 간단한 요리도 해먹었다. 피
난 이틀 째 되던 날 동굴입구에서 총성이 들렸다. 인민군이 공
포를 쏜 것이었다. 곧이어 인민군이 굴에 대고 소리쳤다. “해치
지 않을 테니 집으로 가세요”, “우리는 여러분을 해방시키러 왔
습니다. 나와서 평상적인 생활을 하시요” 그 말을 듣고 동굴 밖
으로 나가보니 인민군이 소련 장총을 메고 있었다. 인민군의 작
은 키에 비해 총이 엄청 커보였다. 그 날 이후 마을 사람들은
마을로 돌아가 별 일 없이 살았다.
그리고 세 달 만에 9.28 수복이 되었다. 당시 논에 벼가 노랗
게 익어갈 무렵이었다. 수복 이전 인민군은 마을의 모든 논을
다니며 곡식의 예상수확량을 조사했다. 심지어 밭에 있는 수수
목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세어 예상수확량을 기록했다. 인민
군은 수수를 수확한 후에 7:3으로 나눌 거라고 말했다. 농사꾼
에게 3을 주고 인민군이 7을 가져간다고 했다. 인민군이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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