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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주었는데백○○가머슴강○○을시켜서유다락에숨어있는이□□씨를살해하였



다.이후수복이된후경찰이와서백○○와아들2명(큰아들,둘째아들)을현재해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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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서자리의공동묘지골짜기로끌고가서총살했다.백○○는아들5형제와딸2자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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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었는데3남은의용군으로가서인민군이되고이후북한의교사가되었다고들었으며4


남은지동기(구술자)의동창이고5남은남한에서살고있다고한다.
형님이6·25이전에안기리의이성진씨에게돈을빌려서마차사업을할때조기,포등
의 생선을 싣고 팔러 다녔는데 인민군 점령기에 영단 방앗간 창고에 갇혀서 동사했다. 셋
째형님은호국군인으로태안초등학교운동장에서훈련받고25연대온양부대에서안동
으로토벌을다녀오고아산평택전투에참여했다가장딴지와허벅지에파편상처를입어
집으로복귀했다.별다른치료도못받아상처가덧나고어려움이있었지만고름이생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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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이빠져나오는바람에자연적으로치료되었다.
작은형님도 여성 의경의 신고로 빨갱이라고 끌려가서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이념간의갈등이라기보다는개인감정으로인한갈등으로생긴피해가더컸다.
매일마을마다나무를잘라서장작불을피우고보초를세워서산에나무가많이없어졌
다. 본인 가족도 태안초등학교 뒤 신사가 있던 곳의 소나무가 우거져 있어 솔잎과 솔가지
로겨울땔감을겨우조달해서살아날수있었다.
6.25가일어나던해에는가뭄이심해서마지기당벼2가마니도나오기힘든상황으로식
량난이심각했으며동네‘자위대’(인민군점령기좌익)가마을에서소를뺏거나사람을죽
이는일도발생했다.
인근의 동력선은 안흥의 최부록 씨의 통통배 1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유복의아들이계순은6·25당시소령으로안동에토벌하러갔다가중간에습격당해서같
이간사람은죽었고이후대령까지진급해서연대장으로예편했다.
전쟁직후에작은한티재에서보도연맹관련자97명을연행해서총을쏘고휘발유3드
럼을뿌리고불을질러학살한사건이있었다.그리고경찰가족들은숯을태워서움직이는
목탄버스를타고안면도백사장에모여배검사를이유로큰배를징발해서피난을갔다.
본인은전쟁이끝나고경찰서소사일을하였기에비교적그내용을잘알고있다.
인민군점령기간에는공출을위해인민군이들어와콩꼬투리와고추나무개수까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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