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928페이지

880페이지 본문시작

6?25전쟁전생활상

남,
한원석 씨는 1937년생으로 이원면 관리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해방 당시 구

술자는초등학교2학년이었으며전교생이650명정도되는이원국민학교를다녔다.해방



전 학교 다닐 때 학생 전체가 의무적으로 일본천황패가 있는 다이마호시데로 가 계단 중


간에서 만세와 절을 하고 내려왔다. 8·15 해방이 된 후 마을에서 두레
를 조성하여 공동
3)


으로논매고밭매고동네잔치도하면서5년간은마을분위기가좋았다고한다.6·25전쟁

5
일어나기 두 달 전 4월 10일, 구술자는 초등학교 졸업을 하였고 12살 차이 나는 큰형님은
서울사범대학입학,둘째형은인천동산중학교에다니고있었다.집안사정도괜찮은편
이었는데논은3천평정도지었고할아버지께서인천으로다니며부식을파는상업을하
셔서생활에여유가있었다.당시농군들하루품삯이됫박으로쌀두되,상머슴은1년에
880
벼 두 섬이었다. 의복은 베옷으로 너무 하얘서 때가 금방 탈까 봐 사람들은 봉지에 담아
파는 물감으로 물들이거나 산에서 왕가랑 잎(떡갈나무 잎)을 가져다 찧어 불그스름한 황
토색으로물들여입었다.
전쟁전좌익활동과개전소식
개전전에마을에좌익사상을지닌두사람이있었는데남로당가입서를보여주면서여
기에도장을찍으면땅을똑같이나눠가지고모두잘살수있다고말하며대략20여명의
도장을받아갔다.이들은전쟁이터지기전에대전형무소로붙잡혀가고소식이끊겼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없던 그때 구술자는 개전 소식을 연락선을 타고 내리로 피난 온
사람들을통해듣게되었다.인천에살던친척들도전쟁나서못살게되었다고그의집으
로찾아왔다.
인민군점령기좌익활동
경찰이후퇴하면서이원면민10명정도를끌고가학살하였으며그중관리사람은좌익
3)농민들이농사일을공동으로하기위해부락이나마을단위로만든조직.

880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