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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권상룡
권상호
형제
權祥龍
權祥虎
< ? ~ ? >
조선 후기의 효자 형제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감찰 지(芷)의 증손자이고 효자로서 금부도사에 증직된 대
평(大平)의 아들이다. 평소에도 부모 섬기기에 효도를 다하였다. 어머니의 병환이 위독하게 되자 이들 형
제는 어머님의 대변 맛이 단지 쓴지 먹어 보면서 북두칠성 앞에 명(命)을 청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죽을 먹었으며 3년 상이 끝나자 또 다시 어려서 아버님을 잃은 것을 지극히 애통하게 여겨서 형
제가 아버님을 위하여 추상(追喪) 3년복을 다시 입었다. 양대(兩代)에 걸쳐 세 효자가 나타나니 고을 사람
들이 모두 아름다운 일이라고 탄복하여 일제히 관찰사에게 포상해주기를 간곡히 요청했다. 이 사실이 왕
(숙종)에게 알려져서 기해년(1719)에 각각 좌랑(佐郞)과 지평(持平)을 추증했다.
[6] 권씨
權氏
< ? ~ ? > -이용덕의 처
근대의 열녀다. 열녀 권(權)씨는 본관이 안동(安東)이
며 대사헌을 지낸 응선(應善)의 손녀이고 진사 연(淵)의
딸로 이름은 덕상이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송악면 외암
리에 사는 예안(禮安) 이씨 가문의 이용덕(李用德)에게
시집을 갔다. 이용덕은 외암 이간(李柬)의 후손이며 퇴
호거사 참판 이정렬(李貞烈, 1868~1950)의 아들이었
다. 그러나 다음 해에 남편이 겨우 15세에 요절하였다.
청상과부가 된 권씨는 효성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죽
은 남편을 위해서도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평생을 조신
하게 살아왔고 86세가 되어 조카 이홍선(李鴻善)을 아들
<안동 권씨 정려각>
로 삼았으나 불행히도 홍선이 세상을 떠나자 다시 홍선
의 조카(동생 득선의 아들)을 손자로 삼아 가문을 유지해 왔다.
그의 삶은 현대인들에게도 귀감이 되었으며 마을 사람들과 군수가 문교부와 문공부에 특별히 천거하여
표창장과 함께 상금을 받게 하였다. 예안 이씨 문중에서는 그의 열행을 후세에 알리고자 마을 입구에 정
려를 세우게 되었다. 정려기는 1978년에 전원식(田元植)이 짓고 최병무(崔秉武)가 글씨를 썼다.
[7] 권유
權愈
< ? ~ ? >
조선 중기 선조 때의 효자로 아산현 사람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조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명정(命旌)하
여 정문(旌門)을 세우고 좌랑(佐郞)을 추증하였다. 정려는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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