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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6~1558)이다. 아버지는 생원 윤경기(尹慶祺)이고 어머니는 전주최씨로 최복필(崔福弼)의 딸
이다.
집안에서는 조부 윤륜의 네 아들이 사화로 위태로워지자 금10냥씩을 갖고 밤에 몰래 각지로 낙향을
했다고 전해진다. 사화에 의한 것은 아니고 아마도 권력을 휘두르던 영의정 윤원형이 1565년(명종
20)에 누나 문정왕후가 죽자 실각하여 관직을 삭탈당하고 황해도 강음으로 쫓겨 갔다가 그곳에서 죽
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친척들도 보복을 당할 것을 염려하여 낙향했을 것으로 본다. 윤경기는 이때 예
산군 신양면으로 들어갔다.
윤흘은 현(峴), 흘(
), 수(脩), 설(
) 등 네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참고로, 이 집안의 족보에 윤
경기의 큰아들 윤현(尹峴)이 호가 양심당(養心堂)이고 온양 정퇴서원에 배향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
나 집안에서는 장남으로서 예산에 살았다고 알고 있으며 가계가 달리 기록된 족보도 있어서 정퇴서
원에 배향된‘양심당 윤현(尹俔)’
과 동일 인물인지 확인할 수 없다.
윤흘의 자는 자무(子武)이며 충의위에 적을 두었다.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이며 현감 이정영(李
廷英)의 딸이다. 그가 언제 왜 송악으로 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약400년 전의 일로 본다. 묘는
아버지의 묘가 있는 예산 신양에 있다.
여지도서 온양군지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외아들 윤대형(尹大亨, 1610~1676)이 1665년 현종의 온
양행궁 행차 때 효행으로 천거되어 사직참봉에 제수되었다고 한다.
윤대형도 아들 정(
) 하나만을 두었으나 윤정이 4남1녀를 둔 이후부터 후손이 널리 퍼지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후손들은 송악면 역촌리, 법곡동, 온천동, 천안시 입장면 등에 살고 있다.
[88] 전주이씨 이경후
| 李敬
<1759년(영조35년)~1830년(순조30년)>
조선 후기의 인물로 조선 태종 이방원(李芳遠)의 8남인 근녕군(謹寧君) 이농의 12세손이다. 전주
이씨(全州李氏) 근녕군파 음봉면 월랑리 입향조이다.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이언정(李彦挺)이며, 어머니는 김해(金海) 김씨(金氏)로 김행원(金
行元)의 딸이다. 부인은 강화(江華) 최씨(崔氏)이며 최중빈(崔重彬)의 딸이다. 연기군 전동에서 음봉
으로 이주하였다. 묘는 음봉면 산동리에 있으며 음력 10월 17일에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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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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