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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윤재건(尹載鍵, 1769~1833)은 삼남으로 윤재탁의 동생이다. 처음 이름은 재후(載厚), 과휘(科
諱)는 재규(載奎), 자는 계통(季通)이고 호는 매은(梅隱)이다. 순조 때(1805년)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치고 가선대부로 경상좌도병마절도사(종2품)에 올랐다. 부인은 양주조씨(楊州趙氏)로 부사
조득경(趙得慶)의 딸이다. 아들이 없어서 형 재탁의 차남을 계자로 들였으니 그 아들 윤정의
(1801~1848)는 통덕랑에 올랐고 아버지와 아들 모두 묘가 역시 매골 뒷산에 있다.
이후 칠원 윤씨는 한 동안 매골에 거주하였으나 지금은 후손들이 살지 않으며 인근 마을인 매곡2리
신풍터에 39세(世)인 윤종철(尹鍾喆, 76세)씨 한 가구가 살고 있다.
[86] 해평윤씨 윤최동
| 尹最東
<1716년(숙종42년)~1748년(영조24년)>
조선 후기의 인물로 해평윤씨(海平尹氏) 19세이며 아산공파(牙山公派) 영인면 월선리 입향조이다.
그는 아산현감을 지낸 윤춘수(尹春壽)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윤득성(尹得成)이며 어머니는 경주정
씨(慶州鄭氏)로 정유안(鄭唯安)의 딸이다.
윤최동의 자(字)는 낙부(樂夫)이며 부인은 낙안오씨(樂安吳氏)로 오명삼(吳命三)의 딸이다. 묘는 영
인면 월선리(달보기)에 있다. 후손은 월선리, 배방, 당진, 천안 등지에 살고 있다.
[87] 파평윤씨 윤흘
| 尹
<1583년(선조16년)~1667년(현종8년)>
조선 중기의 인물이며 파평윤씨(坡平尹氏) 23세로 판도공파 중 정정공파 아산시 송악면 역촌2리
오미니 마을 입향조이다. 현재 역촌리에 살고 있는 36세(世) 윤광덕(尹光德, 50세)의 13대조이다.
그의 고조는 내자시판관을 지낸 윤욱(尹頊)이고 증조는 영돈령부사 파산부원군 윤지임(尹之任)이
다. 윤지임은 아들 다섯을 두었으며 딸이 중종의 둘째 계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이다. 그 중 넷째아
들 윤원로(尹元老)와 다섯째 윤원형(尹元衡)은 외척으로서 권력을 휘둘렀으며 특히 윤원형이 소윤(小
尹)의 영수가 되어 대윤(大尹)의 윤임(尹任) 일파를 몰아낸 을사사화(1545년)를 주도하였다. 윤흘의
증조는 윤지임의 둘째아들인 대호군 윤원필(尹元弼)이고 조부는 풍저창수(豊儲倉守)를 지낸 윤륜(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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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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