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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칠원윤씨 윤재탁
| 尹載鐸
<1765년(영조41년)~1835년(헌종1년)>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칠원윤씨(漆原尹氏) 33세(世)이며 동생 윤재건(尹載鍵)과 함께 아산시 지역,
탕정면 매곡리 매골 마을 입향조이다. 윤재탁 형제가 청양 쪽에서 들어왔는데 함께 들어 온 것인지,
따로 왔다면 누가 먼저 들어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시기는 대략 220년 전의 일로 추정된다. 현
재 매곡2리에 거주하는 39세(世) 윤종철(尹鍾喆, 76세)씨의 6대조이다.
윤재탁은 무과에 급제한 뒤 경기도 수군절도사 등을 지냈으나 서인이 남인에 의해 축출된 1689년
의 기사환국으로 유배되어 세상을 뜬 윤시달(尹時達)의 현손이다.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윤일
상(尹一商)의 증손이며 신축환국(1721년) 등을 겪은 뒤 고향인 청양 장평으로 낙향한 윤성구(尹聖龜)
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효행으로 이름 있는 윤선국(尹 國, 1728~1798)이고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영장 김좌국(金左國)의 딸이다.
윤재탁은 3형제 중 차남이며 초명은 재혁(載赫)이고 자는 관보(寬甫)이다. 정조 때 무과에 급제한
뒤 초산과 길주의 수령을 지내며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으며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정3품)에
까지 올랐다. 묘가 매곡1리 매골 마을 뒷산 자락에 있다. 부인은 의성김씨(義城金氏)와 계배 전주이
씨(全州李氏)인데 전주이씨 소생으로 아들 다섯이 있었다. 큰 아들 윤치의(尹致誼, 1797~1863)는 순
조 때 무과에 급제하고 가선대부로 충청도 병마절도사(종2품)에까지 올랐고 부인은 덕수이씨(德水李
氏)로 이노서(李魯瑞)의 딸이다. 윤치의의 묘도 마을 뒷산, 아버지 묘의 동쪽에 있다. 둘째아들 윤정
의(尹定誼)는 숙부 윤재건(尹載鍵)의 계자로 들어갔으니 결국 매곡1리 칠원윤씨는 윤재탁의 후손이
되는 셈이다.
-윤재탁의 묘와 윤재건의 묘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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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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