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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신녕윤씨 윤자임
| 尹自任
<1407년(태종7년)~1478년(성종9년) >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신녕윤씨(新寧尹氏)의 시조이자 아산시 지역, 영인면 성내리 입향조이다. 신
녕윤씨는 파평윤씨(坡平尹氏)에서 분관(分貫)하였으며 그는 파평윤씨로는 16세(世)에 해당한다.
아버지는 윤신비(尹莘卑)이며 그 이외의 선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족보에는 윤
포(尹浦)가 고조, 윤천을(尹天乙)이 증조, 윤성기(尹成起)가 조부로 이름만 기록되어 있고 형 윤자상
(尹自商, 일명 중임仲任, 1394~?)이 있다.
자는 충부(忠父)이다. 1432년(세종 14)에 박팽년 등과 함께 사마시 생원과에 합격하였고 1450년(문
종 즉위년) 식년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正言)·사헌부장령(掌令-종4품)을 거
쳐 승문원 부교리 겸 지제교에 임명되었다. 정산현감·영주군수·경기도사를 역임한 뒤 사헌부 집의
(執義-정3품)에 이르렀다. 정산현감 때 선정을 베풀어서 주민들이 동비(銅碑)를 세웠다. 연로하여 벼
슬에서 물러나 영인면 고용산(高湧山) 아래, 영인면 성내리 쇠재에 와서 살았다. 약 530년 전이며 얼
마 뒤 72세에 졸했다. 묘는 송악면 평촌리에 있으며 그의 현손 윤지복(之復)이 묘지(墓誌)를 지었다.
부인은 평강채씨(平康蔡氏)이며 좌필선 채윤(蔡倫)의 딸이다. 반(
), 염(恬), 오(悟), 침(
), 성(惺)
등 5남을 두었다. 이 중 윤염은 승의부위에 오르고 온양정씨(溫陽鄭氏) 절충장군 정종로(鄭從魯)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윤침(1454~1504)는 충무위 부사직에 올랐고 부인은 담양전씨(潭陽田氏)로 고령
현감 전실(田實)의 딸이다. 윤성은 현신교위(종5품)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윤침의 손자(윤세균
의 아들) 윤필은(尹弼殷, 1516~1586)은 삼척부사를 지낸 뒤 아들 윤지복 덕에 병조참의에 증직되었
고, 윤지복(尹之復, 1569~1638)은 사마
시와 문과에 급제하고 형조 정랑에 올랐
으며‘아산8문장’
으로 이름을 남겼다.
윤침의 또 다른 손자(윤세형의 아들) 윤
취은(尹就殷, 1518~1593)은 효행으로
여러 차례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
양하였으며 아산현감을 지낸 토정 이지
함(李之
)도 그의 효성을 칭송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후손들이 많지 않은 편이며 영인면 아
-윤자임의 묘-
산리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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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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