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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척스런둘째형님


8남매에 여섯째, 아들로는 6남 중에 둘째다. 예전에는 많이 낳았다고 볼 수 없다. 8남


매는흔히있었던자녀수이기때문이다.둘째형님이좀억척이었다.당시둘째형님이면



천농업학교에 다녔는데 하우스로 토마토와 오이를 재배했다. 지금이야 하우스를 이용해
서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흔한 일이지만 예전에는 보기 드문 농사였다. 하우스에서 토마
토나오이를재배해서팔았다.가까운당진은큰시장이아니어서서산에내다팔았다.전
날포장을해놓았다가다음날아침에일찍서산에내다소매상에넘기고학교에갔다.
형님은제대후에예산에자리를잡았다.그때시작한것이부흥상회였다.씨앗도팔고
농약도취급했다.형님이예산에있어고등학교를예산농고로진학했다.당시예산농업학
교는 5년제였다. 예산농업고등전문학교라고 했는데 고등학교 3년, 초급대 2년으로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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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제였다. 학과는 농업과, 원예과, 축산과, 토목과 네 개과가 있었다. 당시 농고 입학 지
원자가 많아 5대1로 높았다. 물론 시험을 보아 선발했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쉽게 원서를
써주지않았다.학생수는한학년160명,한과에40명이정원이었다.유급제도가있어한
학과에40명이넘는경우가많았다.
농고가예산에있지만입학생은전국에서몰려들었다.오히려예산출신들은얼마없었
다. 농고 졸업생들은 개인 회사로 취업을 많이 했다. 당시는 공무원이 인기가 없어서 많이
안나갔다.동기생중전공을살려농장을경영한사람은대여섯명정도였다.아이러니하
게도 농업 전문교육으로 전문인을 길러냈는데 실제로 취업하기는 일반 회사로 진출을 많
이했다는점이다.당시행정공무원은박봉이었다.그래서공무원쪽으로는관심이별로없
었다.공무원이아니더라도갈곳이많았기때문이다.
군제대후,비료대리점을시작했다
군 제대 후에 둘째 형님 가게에서 일을 배웠다. 오래 같이 일하기보다는 독립을 해야겠
다는생각으로시작한것이비료대리점이었다.비료만단일종목으로판매하는가게를열
었다.마침정부에서도본격적으로비료를생산하기시작하였고,화학비료에대한농민들
의관심이높아지고있었던때였다.화학비료가나오기이전에는그저인분이나가축의배
설물을 사용하였고, 거름을 한다고 해야 들이나 산에서 나뭇가지나 풀을 베어다가 넣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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