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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 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4
평생을 갯벌에서 갯것을 잡아, 자식을 키우고 교육한 김의자 씨는 예순 살이 넘도록 머슴
처럼 일만 한 아낙네였다. 시어머니가 80살까지 경제권을 틀어쥐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의지대로 살림을 챙긴 건 시어머니가 94살에 죽은 뒤부터였다. 그녀의 나이 예순 살
이되어서야시집살이를벗어난것이다.
1남 3녀를 둔 그녀는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더 억척스럽게 갯것을 했다. 조개뿐만 아니라
남편과 같이 낙지도 잡으러 다녔다. 김의자 씨는 낙지 가래로 낙지를 잡지 않고 호미로 파
서 잡았다. 낙지는 구멍을 따라가며 호미로 개흙을 파서 잡는데 깊은 구멍을 파야 낙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 당시 부부가 한사리, 일주일 동안 낙지를 잡으면 논 한 마지기 살 정도로
돈을 잘 벌었다. 하루에 100~200마리씩 잡았으니 일주일에 1,500마리를 잡은 셈이었다.
낙지는 대부분 살려서 팔았지만 ‘건낙지’로 만들어 팔기도 했다. 가을 낙지가 굵고 잘 잡혔
다. 김의자 씨는 조개를 긁어오면 밤새 까야 하는데 낙지잡이를 하면 밤에 잠을 실컷 자서
좋았다며 7~8년 동안 낙지를 잘 잡다가 그만뒀다고 구술했다. 이유는 정산포와 파도리 배
들이낙지주낙을하는바람에펄낙지가귀해졌기때문이었다.그녀는요즘도사리물때는
밤에마금리바다가환한데그건배에서비치는낙지주낙불빛이라고알려줬다.
그리운남편성인경
남편 성인경이 조개 장사를 시작한 건 낙지잡이를 그만둔 무렵이었다. 남편은 마금리 사
람들이 잡은 조개를 수집하여 상인에게 넘겼는데 돈을 벌기는커녕 까먹은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이자라면서학비를대느라쓸돈은많은데남편의수입은점점줄어들었다.그몫을
그녀가 조개를 긁어 번 돈으로 채웠다. 부부가 낙지를 잡아, 살림을 일으킬 때는 사는 재미
가 있었는데 남편이 장사에 손을 대면서 어느 해는 황소를 끌어다 팔기도 했다. 그런 생활
을 하다가 남편은 오토바이 사고로 뇌를 다쳐서 병원에서 투병하다가 사망했다. 김의자 씨
나이예순일곱살때였다.
김의자씨의남편은어머니의말을거역하지않았던착한사람이라고했다.남편은신혼초
에 서울 사촌 누나네 과자 공장을 다니기도 했고, 고향으로 내려와서는 마금리에 최초로 지
주식김양식을도입했다.그는마금리어촌계설립을주도했고조개장사를하는등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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