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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종교로 까오다이교라는 독특한 종교가 있는데 세계 5대 종교인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 도교 등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 이념을 토대로
한 종교이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 모양부터 교리까지 여러 종교가 혼합된
모습이다. 까오다이교 사원의 예배당 안엔 큰 지구본 모양의 원에 눈
하나가 그려져 있고 예수, 부처, 마호메트, 공자 등이 함께 서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미스테리 한 그 분위기가 마치 우리나라 인기 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를 떠오르게 했다.
후에
다낭엔 우리나라 서울의 한강과 이름이 같은 강이 흐른다. 베트남에서의
다낭 북쪽엔 세계 10대 비경 중 하나로 손꼽힌 하이반 고개가 있다. 베트남에서 가장 높고 긴 이 고갯길의
마지막 날 한강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바라보며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저 멀리 다낭의 비치와 도시가 내려다보인다. 하이반 고개의 아름다운 비경에서
가족들을 떠올려 보았다.
고개를 돌리면 전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남과 북의 경계선으로 가장 치열한 전투가
있던 장소로 우리나라 파견군도 전쟁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산 정상 부근 휴게소에는 부서진 성문과 건물, 총탄
호이안
자국이 그날의 치열한 전투를 말해주는 가운데 많은 관광객들은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다낭에서 남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에 호이안이 위치한다. 호이안은 투본강을 끼고 형성된 도시인데 바다의
없다. 특히 부서진 초소 위는 웨딩 촬영의 명소인 듯하다. 전쟁의 참혹함이 상품이 되는 시대이다.
실크로드라 불렸던 동남아 최대의 무역항이었던 유서 깊은 도시다. 호이안에는 전통적인 동남아시아 무역항의
이런 하이반 고개를 넘어가면 후에라는 도시가 있다. 후에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이며 ‘후에 기념물
모습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데 바로 이곳 호이안의 구시가지가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복합지구’로 1993년 베트남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왕궁, 성, 사원, 왕릉 등 많은 이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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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세계문화유산하면 박물관에 있거나 거대한 스케일을 눈으로만 감상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호이안은 도시
유적지 가운데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후에 왕궁은 작은 자금성이라고 불릴 만큼 넓은 왕궁이다. 우리나라의
해외연수
답사기
자체가 문화유산이다. 복고적인 골목 풍경과 함께 오래된 가옥에선 여전히 상점과 식당 등을 운영하고 있어 마치
경복궁처럼 외국인들에겐 필수 코스인 듯하다. 베트남인의 유창한 한국어 안내를 통해 짧게나마 베트남의 역사를
해외연수
과거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들어볼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종묘처럼 베트남 왕의 위패를 모셔 놓은 사당에서 몇몇 왕들의 행적을
답사기
전통적인 좁은 골목길을 따라 가옥, 탑, 사원, 공동체 건물, 시장 등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일본인 마을과
살펴보았는데 폭군과 무능한 왕에 대한 비판과 분노는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는 듯하다. 하지만 백성을 착취하고
중국인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인 ‘일본교(日本橋)’, 중국식 옛 가옥들과 탑, 베트남 전통의상들과 먹거리들...
나라를 고스란히 프랑스에 바쳤던 카이딘 왕은 천수를 누리고 가장 화려한 왕릉을 자랑하고 있었다. 베트남
국제 무역항 다운 융합된 문화와 베트남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 찬 호이안 시가지는 온통
국민이라면 물론이요, 우리조차도 욕하며 카이딘 왕릉을 들어섰지만 입구를 들어서며 엄지척 할 수 밖에 없으니
관광객들로 가득 차 시끌벅적하다. 마치 서울의 명동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관광지보다 서양인들이
참 아이러니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비록 그 눈부심에 잠시 감탄했지만 인류라면 역사에 대한 반성과 고찰이
많아 이색적인 분위기인데, 일정에 쫓기는 우리와 달리 식당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도시의 분위기를 즐기는
반드시 있어야 하리라 되새겨본다.
모습에 부러움을 느낀다.
과거 이곳은 16~17세기 무역도시로 번성했지만
베트남의 문화는 중국으로부터 천 년 동안 지배를 받아서 불교문화와 유교적인 전통이 혼합된 듯하다. 또한
다낭과 같은 다른 항구들이 부상하면서 급격하게
습한 날씨 때문인지 목조건축은 보기 어려웠고 고급 건축물에서는 돌보다 단단한 흑단나무와 우리나라에서는
약화되었고 그 점이 오히려 원형 그대로 남을 수 있었던
보기 힘든 대리석 바닥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오래 세월을 겪은 석조물들엔 이끼가 껴서 검은색 돌처럼 보였다.
이유가 되었다. 이제 호이안을 끼고 있는 투본강엔 더
중국이 그러하듯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도 급속한 경제발전 중임을 알 수 있었다. 화려한 야경을 바라보며
이상 포르투갈, 프랑스, 인도, 중국, 일본 등의 상선은
관광지마다 바나나를 들고 ‘원달러’를 외치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찾을 수 없다. 하지만 21세기 상선 비행기를 타고
지난 4일간 우리는 베트남의 수많은 모습 중 일부만을 보고 왔을 뿐이지만 작은 체구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를
이곳까지 온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먹고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현재 인구의 50%가 30대 미만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에 비하면 파릇파릇한 청년 아닌가?
즐기며 상품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로 가득하다. 신세기
그들의 고유문화를 잃지 않고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교류하고 상생하는 미래를 그려보며 짧은 여행의 여운을
국제무역도시의 부활. 이곳 호이안이 아닐까?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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