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52페이지

80페이지 본문시작

들이 탕정면 용두2리 무재 마을의 중심으로 염치, 송악, 온양, 진천 등 각지로 퍼져 나가 오늘까지 번
성하였다.
-윤양선의 묘와 재실 모현재-
[83] 파평윤씨 윤인
| 尹
<1456년(세조2년)~1549년(명종4년)>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파평윤씨(坡平尹氏) 20세이며 태위공파 중 교리공파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
(황골) 입향조이다. 대동리에 살고 있는 36세(世) 윤재영(尹在永, 64세)의 16대조이다.
그는 태종 14년(1414) 문과 급제 후 교리(校理)를 지낸 윤돈(尹惇)의 현손이며 윤돈의 후손은 교리
공파로 칭한다. 통정대부로 삼척부사를 역임한 윤계흥(尹繼興)의 증손이고 진사시와 문과에 급제하
고 여러 관직을 거쳐 통례원우통례(通禮院右通禮)에 올랐고 이조참의에 특증(特贈)된 윤석(尹晳,
1435∼1503)의 손자이다. 윤석은 세상을 뜬 이듬해인 1504년(연산군10)의 갑자사화로 부관참시를
당하는 참화를 입었다. 이는 이후 후손들 중에 벼슬에 거리를 두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는 생
원 윤인저(尹仁著)이고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로 현령 한숙윤(韓叔倫)의 딸이다.
윤인은 1남2녀 외아들로 자는 인지(
之)이다.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고 여러 곳의 목사 등을 거쳐
가선대부(종2품) 좌부승지까지 올랐다. 무과 출신이지만 문과를 준비하며 학문에 정진했기 때문에
경전에 해박하고 시서(詩書)에 뛰어나 이름이 있었다. 그가 언제 왜 들어왔는지 확인할 수 없다. 집안
80
아산입향조 |

80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