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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서산천수만의옛모습
숭어 새끼인‘몰치·모쟁이’, 조기 새끼인‘보걸치’, 꽁치 새끼인‘황새바치’,
꽃게 새끼인‘사시랭이’, 장어 새끼인‘시라시’, 도미 새끼인‘피데기’등이
태어났다. 조선시대의 각종 읍지(邑誌)에는 인근에서 가장 많은 어종이 토산물로
기록되어 있고, 1926년『서산군지』에 50종 이상의 어류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러한사정에기반한다.
더불어 서산 천수만 지역의 앞쪽에 병풍처럼 막고 있는 안면도로 인해 천수
만의 외안과 달리 내안은 회유성 어류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천연의
양어장이었다. 풍부한 어족자원으로 인해 바깥 바다로 나가지 않고도 내륙 연
안과넓게발달된조간대에서조업이가능했다.
발달된 조간대에서는 여느 서해안과 마찬가지로 어살이 발달했다. 인근의 태
안과 달리 이곳에는 독살이 발달되지는 않았다. 모래와 진흙펄이 발달되었기에
돌 이용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이기는 하지만 간월도, 검은
여와 같이 돌이 많은 지역에서는 돌살을 만들기도 했다. 어살은 홀로 운영하기
도 했지만 마을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어살 제작용 대나무를 베어다 주고, 발을
엮어 주고, 어살을 세워주고는, 고기가 잡히면 어살 주인이 그것을 참석자들에
게 일정양을 나누어주는‘바루살이’방식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갯고랑이 발
달되었기에그곳에서는다양한연안어법이시행되었다.
수심이 얕은 천수만 내안의 대표적인 연안 어업은 망그물과 후릿그물을 활용
한 어선어법이다. 그러나 이들 망그물과 후릿그물은 어선을 활용하지 않고도
갯고랑에서 조업이 가능한 대표적인 전통어법으로 어선의 활용을 통해 보다 많
은 어획이 가능해졌다. 사람이 그물을 끌던 데서 어선이 그물을 끌게 되면서 어
업은 보다 본격화되었다. 망그물로는 주로 오징어를 잡았고, 후릿그물로는 숭
어, 전어 등의 다양한 어종을 어획했다. 이들 어물의 어가가 낮았기에 어민은
반농반어의 생활방식을 유지했다. 수심은 얕지만 큰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해
간조 시에는 각양각색의 개펄이 넓게 드러난다. 개펄 그 모습만큼이나 다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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